의원실의 국정감사자료
[윤관석의원실-20130927]유영익 내정철회 촉구 시리즈1탄
의원실
2013-10-10 11:42:54
24
윤관석, 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자 저서 분석
‘독재 및 친일파 청산 못한 과거 미화 심각’
- 역사적 객관성 잃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자격 없어
- 윤관석 의원 “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 취소”촉구
박근혜 대통령이 유영익 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하여 국회‧역사학계‧시민단체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유영익 교수의 저서 내용이 왜곡에 가까운 미화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27일(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관석 의원(민주당 교과서대책위 위원, 정책위부의장)이 유영익 교수의 저서 중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와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을 확인해 본 결과 독재, 선거부정 등 민주화 된 사회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잘못들을 합리화하는 ‘찬양 ’수준의 내용이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나은 독재’로 표현하며 독재 미화
: 외세의 국가이익 추구 편승, 정권 연장을 위한 독재 등 합리화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1. 정치분야 업적 中
481p“그가(이승만) ‘미제의 앞잡이’로서 한국과 한국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외세의 ‘국가 이익 추구에 편승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504p“이승만은 단정의 선창자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택한 노선은 한민족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예방하고 ‘자율적으로’ 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519p“이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선거가 반드시 자파에 유리하지 않을 때에도- 부정선거를 감행하면서 까지 – 선거를 정규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점에 있어 이대통령의 ‘독재’는 박정희(朴正熙) 및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등의 ‘군사독재’에 비해 훨씬 더 ‘민주적’이었다.”
522p“요컨대, 이대통령은 1952년 이후 권력 확장에의 끊임없는 집착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였고, 선거와 의회제도를 존속시켰으며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민주주의 창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취하였다... (중략) 제1공화국기의 권위주의적 지배는 박정희·전두환 등으로 대표되는 군부의 독재에 비해 비교적 온화(溫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2. 친일파 청산 못한 이승만 대통령을 우익 진영 최고 지도자로 미화
: 친일파로 평가되는 김성수, 백성욱 등과 우익단체에게 1억 넘는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정치자금을 받아 우익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굳혔다’고 기술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재인식」 제4강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 中
128p“이승만 박사는 1946년 5월 미군정의 암묵적 협조하에 대한경제보국회로부터 ‘애국금’이라는 명목으로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중략) 이승만 박사는 그 후에도 우익단체와 기업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정치자금을 조달받았어요. 예컨대, 1946년말~1947년 초 김성수, 백성욱 등과 우익단체로부터 도미외교 후원금 명목으로 1억 470만 4,820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았습니다... (중략) 이승만 박사는 1946년 중반까지 해방공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수 요건인 미군정의지지, 강력한 대중조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정치자금 등을 확보함으로써 우익 진영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겁니다.”
3.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미화
(1) 이승만 대통령을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콘스탄티누스, 야곱 등에 비견하며 비상한 권능을 가진 인물로 표현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1. 정치분야 업적 中
500p.“이승만은 해방 후 다른 정치인 내지 독립운동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상한 권능과 매력을 갖춘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해방정국에 소신대로 새 나라를 건국하고 통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502p.“요컨대, 이승만이 전개한 반탁운동 덕택으로 한민족은 일종의 보호국 정치라고 볼수 있는 열강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를 면하고 3년만에 자율적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515~516p“이승만의 공적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와 왕조 초창기에 치밀하게 국가의 기반을 다져놓은 현실주의 정치가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의 업적에 비길만 하다.”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재인식」본문 中
139p“이승만은 역사에 보기 드문 위재(偉才)였습니다. 그는 청년기 이래로 오로지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온 생애를 바친 애국자였습니다... (중략) 해방 후 귀국한 그는 맨 먼저 국내에 정치기반을 구축하고 그 다음에 미국 정부로 하여금 자신이 구상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했지요... (중략)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구약 성경의 유명한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偉業)임에 틀림없습니다.”
(2)‘한국 역사상 최대’,‘최고’ 용어를 사용하며 이승만 대통령 미화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3. 군사분야의 업적 中
539p“한마디로, 이대통령은 6·25전쟁 발발 후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60-70만 대군’이라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비군을 보유하는 망외(望外)의 군사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이로써 그는 19세기 이래 대다수 한국인이 희구하였던 ‘부국강병’의 꿈을 반분이나마 실현하였고, 대한민국을 아시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군사대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4. 경제분야의 업적 中
549p“결론적으로 이대통령 치하에서 완결된 농지개혁은 구래의 지주제 토지소유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작농적 토지소유제를 확립시킴으로서 한국 농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한편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속에서 이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여 추진한 농지개혁은 조선왕조 창건기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단행한 과전법(科田法) 이래 최대 규모의 토지개혁으로서 그 역사적 획일성이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7. 문화·종교분야의 업적 中
571p“이대통령 치하에서 남한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의 ‘불교정권’ 및 조선의 ‘유교왕조’와 대비되는 - ‘기독교적 정권’ 내지 ‘기독교 국가’가 대두하였고 그의 통치기간에 다져진 교회의 기반이 1960년대 이후 남한이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로 부상하는데 도약대가 되었다. 이 점에서 이대통령은 서기 372년에 한국 역사상 최초로 유교와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의 소수림왕(小獸林王)이나 유럽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로서 ‘종교 자유의 칙령(313)’을 발포하여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에 기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적에 비견되는 업적을 한국 종교사에 남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윤관석 의원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건국 60년사를 재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는데 힘쓴 인물”이라며, “독재와 친일파 청산 못한 과거를 합리화시키는 유영익 교수는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고 한국사편찬 사업을 주도할 국사편찬위원장에 부적합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의원은 “객관성을 잃고 편향된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내정 취소”를 주장했다.
또한 윤 의원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한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역사학계 3대 기관의 기관장을 모두 뉴라이트 인사가 맡게 됐다”며 “우편향 3각 트리오를 앞세워 잘못된 과거를 합리화시키는 역사왜곡이 감행되는 것이 아닌지”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윤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고대‧중세사를 집필한 일부 저자들이 ‘필진 명단 제외, 수정작업 불가’의 내용 증명을 교학사에 보낸 것에 대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시키는 일부 역사학자들로 인해 또다른 집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교학사교과서의 검정취소를 촉구했다.
‘독재 및 친일파 청산 못한 과거 미화 심각’
- 역사적 객관성 잃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자격 없어
- 윤관석 의원 “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 취소”촉구
박근혜 대통령이 유영익 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하여 국회‧역사학계‧시민단체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유영익 교수의 저서 내용이 왜곡에 가까운 미화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27일(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관석 의원(민주당 교과서대책위 위원, 정책위부의장)이 유영익 교수의 저서 중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와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을 확인해 본 결과 독재, 선거부정 등 민주화 된 사회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잘못들을 합리화하는 ‘찬양 ’수준의 내용이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나은 독재’로 표현하며 독재 미화
: 외세의 국가이익 추구 편승, 정권 연장을 위한 독재 등 합리화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1. 정치분야 업적 中
481p“그가(이승만) ‘미제의 앞잡이’로서 한국과 한국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외세의 ‘국가 이익 추구에 편승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504p“이승만은 단정의 선창자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택한 노선은 한민족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예방하고 ‘자율적으로’ 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519p“이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선거가 반드시 자파에 유리하지 않을 때에도- 부정선거를 감행하면서 까지 – 선거를 정규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점에 있어 이대통령의 ‘독재’는 박정희(朴正熙) 및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등의 ‘군사독재’에 비해 훨씬 더 ‘민주적’이었다.”
522p“요컨대, 이대통령은 1952년 이후 권력 확장에의 끊임없는 집착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였고, 선거와 의회제도를 존속시켰으며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민주주의 창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취하였다... (중략) 제1공화국기의 권위주의적 지배는 박정희·전두환 등으로 대표되는 군부의 독재에 비해 비교적 온화(溫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2. 친일파 청산 못한 이승만 대통령을 우익 진영 최고 지도자로 미화
: 친일파로 평가되는 김성수, 백성욱 등과 우익단체에게 1억 넘는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정치자금을 받아 우익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굳혔다’고 기술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재인식」 제4강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 中
128p“이승만 박사는 1946년 5월 미군정의 암묵적 협조하에 대한경제보국회로부터 ‘애국금’이라는 명목으로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중략) 이승만 박사는 그 후에도 우익단체와 기업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정치자금을 조달받았어요. 예컨대, 1946년말~1947년 초 김성수, 백성욱 등과 우익단체로부터 도미외교 후원금 명목으로 1억 470만 4,820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았습니다... (중략) 이승만 박사는 1946년 중반까지 해방공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수 요건인 미군정의지지, 강력한 대중조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정치자금 등을 확보함으로써 우익 진영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겁니다.”
3.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미화
(1) 이승만 대통령을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콘스탄티누스, 야곱 등에 비견하며 비상한 권능을 가진 인물로 표현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1. 정치분야 업적 中
500p.“이승만은 해방 후 다른 정치인 내지 독립운동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상한 권능과 매력을 갖춘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해방정국에 소신대로 새 나라를 건국하고 통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502p.“요컨대, 이승만이 전개한 반탁운동 덕택으로 한민족은 일종의 보호국 정치라고 볼수 있는 열강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를 면하고 3년만에 자율적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515~516p“이승만의 공적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와 왕조 초창기에 치밀하게 국가의 기반을 다져놓은 현실주의 정치가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의 업적에 비길만 하다.”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재인식」본문 中
139p“이승만은 역사에 보기 드문 위재(偉才)였습니다. 그는 청년기 이래로 오로지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온 생애를 바친 애국자였습니다... (중략) 해방 후 귀국한 그는 맨 먼저 국내에 정치기반을 구축하고 그 다음에 미국 정부로 하여금 자신이 구상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했지요... (중략)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구약 성경의 유명한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偉業)임에 틀림없습니다.”
(2)‘한국 역사상 최대’,‘최고’ 용어를 사용하며 이승만 대통령 미화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3. 군사분야의 업적 中
539p“한마디로, 이대통령은 6·25전쟁 발발 후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60-70만 대군’이라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비군을 보유하는 망외(望外)의 군사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이로써 그는 19세기 이래 대다수 한국인이 희구하였던 ‘부국강병’의 꿈을 반분이나마 실현하였고, 대한민국을 아시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군사대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4. 경제분야의 업적 中
549p“결론적으로 이대통령 치하에서 완결된 농지개혁은 구래의 지주제 토지소유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작농적 토지소유제를 확립시킴으로서 한국 농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한편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속에서 이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여 추진한 농지개혁은 조선왕조 창건기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단행한 과전법(科田法) 이래 최대 규모의 토지개혁으로서 그 역사적 획일성이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7. 문화·종교분야의 업적 中
571p“이대통령 치하에서 남한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의 ‘불교정권’ 및 조선의 ‘유교왕조’와 대비되는 - ‘기독교적 정권’ 내지 ‘기독교 국가’가 대두하였고 그의 통치기간에 다져진 교회의 기반이 1960년대 이후 남한이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로 부상하는데 도약대가 되었다. 이 점에서 이대통령은 서기 372년에 한국 역사상 최초로 유교와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의 소수림왕(小獸林王)이나 유럽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로서 ‘종교 자유의 칙령(313)’을 발포하여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에 기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적에 비견되는 업적을 한국 종교사에 남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윤관석 의원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건국 60년사를 재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는데 힘쓴 인물”이라며, “독재와 친일파 청산 못한 과거를 합리화시키는 유영익 교수는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고 한국사편찬 사업을 주도할 국사편찬위원장에 부적합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의원은 “객관성을 잃고 편향된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내정 취소”를 주장했다.
또한 윤 의원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한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역사학계 3대 기관의 기관장을 모두 뉴라이트 인사가 맡게 됐다”며 “우편향 3각 트리오를 앞세워 잘못된 과거를 합리화시키는 역사왜곡이 감행되는 것이 아닌지”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윤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고대‧중세사를 집필한 일부 저자들이 ‘필진 명단 제외, 수정작업 불가’의 내용 증명을 교학사에 보낸 것에 대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시키는 일부 역사학자들로 인해 또다른 집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교학사교과서의 검정취소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