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의 국정감사자료
[이상일의원실-20150917][문화재청]日‘하시마섬’강제동원 역사 왜곡 진상 알리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기록물 유네스코 등록 철저히 해야
의원실
2015-10-05 1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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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사항>
◎ 나선화 문화재청장께 질의하겠음.
◎ 지난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 방송이 논란 속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섬을 찾아 강제징용 등의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함. 이후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
◎ 하루 12시간씩, 섭씨 40도가 넘는 지하갱도에서의 석탄 채굴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만 약 800명이고 공식 사망자수도 122명에 이르지만 일본이 1914년 하시마 탄광을 폐쇄하면서 강제동원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해 납골시설을 없애고 유골을 임의로 처리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음.
◎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정부의 대응임. 일본의 하시마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이 있음. 외교 당국에서 자화자찬 했던 ‘강제노동’ 문구 표기에 대해 일본 외부성은 등재 직후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함. 역사수정주의를 앞세운 일본의 치밀한 준비에 대해 우리 정부가 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임. 당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당시에 어떻게 대응했나?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 일본의 강제동원 역사 왜곡에 대한 진상을 알려야 함. 그렇지 않으면 후쿠오카 아소탄광 11만명, 홋카이도 고노마이 광산 15만명, 아키타현 고사카 광산 1만 3000명,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 1000여명 등 더 끔찍한 강제징용 역사들이 언제 또 다시 미화될지 모름. 우리의 상처가 일본의 영광이 돼선 안 됨.
◎ 정부는 13일 하시마 등 조선인 강제동원 산업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대한 맞대응으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한다고 밝힘. 문화재청은 지난달 31일 마감된 ‘2016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 공모’에 접수된 등재 신청 후보 12건 가운데 ‘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 33만6797건이 포함됐다고 13일 밝혔음. 향후 추진 계획과 가능성은 어떠한가?
◎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주무부처로서 관련 부처와 국회, 언론 등의 원활한 협조를 통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임.
<질의자료>
◎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 떨어진 작은 섬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이 섬은 일제강점기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때문에 ‘지옥도’로 불림.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1890년 사들여 해저탄광을 개발했음. 수백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강제동원돼 고통을 겪었고 확인된 사망자만 100명이 넘음.
◎ 하시마는 지난 7월5일 한·일 양국이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합의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 지난주 방영된 MBC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하하와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는 논란 속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를 찾았음. 일본이 강제징용의 역사를 지운채 하시마를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곳”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탄광”이라며 홍보하고 있는 현실을 접하면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울분을 토함.
◎ 일본 나가사키 서남쪽 해저 탄광인 하시마, 일명 군칸지마(軍艦島)는 일본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주변국들에겐 침략 피해의 상징임.
◎ 이곳에 투입된 노동자는 주로 조선인이나 중국인들로, 외부와 격리돼 하루 12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음. 1925~1945년 이 섬에서 숨진 조선인은 122명에 이름. 살해되거나 폭행·학대로 숨진 조선인도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됨.
◎ 2012년 10월4일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 보고서를 공개함. 위원회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면서 하시마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숫자가 해마다 늘어 1943~1945년에 500~800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확인된 사망자는 122명에 달한다”고 밝힘.
◎ 위원회는 17세 이상 조선인 사망자(92명) 중 폐렴과 천식 등 각종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28명(30), 타박상·골절 등 외상 사망자가 13명(14), 질식·압사 등 매몰사고 사망자가 17명(18.5)이었다고 밝힘.
◎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중 일부는 1945년 9월 인근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돼 방사능에 노출되기까지 했음. 하시마 탄광은 1974년 폐광돼 무인도가 됨.
◎ 일본 정부는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치밀하게 추진함.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나가사키현의 나가사키 조선소 등 현재 가동 중인 시설과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 등 8개현에 걸친 28개 시설·유적으로 구성돼 있음.
◎ 일본은 2009년 1월5일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인 규슈·야마구치 지역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함. 2012년 7월3일에는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위한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고 도쿄서 첫 회의를 개최함. 같은해 9월20일 세계유산조약과 관련한 정부기관 연락회의에서 기타큐슈(北九州)시의 야하타(八幡) 제철소 등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공식 결정함. 등재 목표 시기는 2015년으로 발표함.
◎ 당시 한국 정부는 ‘이웃 국가의 아픔과 관련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철회를 요구함.
◎ 한국의 반대에도 일본은 지난해 1월 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공식 제출함. 일본은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와 관련 지역’으로 명칭을 붙이고 당초 잠정 목록에 없었던 ‘등재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하는 꼼수를 부림.
◎ 1940년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제외시킴으로써 과거 어두운 역사를 덮으려 한 것임. 지난 5월5일 일본 정부는 전국에 흩어진 23개 산업시설을 모아 일괄추천하는 방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등록 권고를 받아냄. 한국과 일본은 7월5일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하고, 이들 시설의 유산 등재에 합의함.
◎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과거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자신들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일본의 입장 발표문을 주석(footnote) 형식으로 등재 결정문에 명시함.
◎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내려진 후 하루만에 말을 바꿨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하지 않았다고 밝힘.
◎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7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마를 비롯한 7 시설에 대한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인함. 그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졌을 때 산업유산 시설에 조선인 동원 문제가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힘.
◎ 자민당은 같은달 15일 국제정보검토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합동회의를 열고 사토 구니(佐藤地)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부 시설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역했다고 언급하면서 제기된 논란을 의제로 다룸. 이날 회의에서는 ‘징용은 강제노동이 아니다’는 뜻을 제대로 국제사회에 알리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는 방안을 검토함.
◎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하면서 등재 명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데 이어 조선인이 강제노동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또 있음.
◎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시설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일본인 등 국적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함. 지난 7월16일 <아사히신문>은 전날 열린 일본 자민당의 외교부회에 출석한 신미 준(新美潤)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유네스코 회의에서 약속한 피해자 추모 조치의 ‘피해자’ 범위와 관련해 “출신지에 관계없이 탄광이나 공장 등에서 사고·재해를 당하거나 사망한 분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함. 이는 향후 추모하게 될 ‘피해자’의 범위에 한반도 출신뿐 아니라 일본인까지 포함시킨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아사히는 해석함.
◎ 정보센터 등의 추모시설이 신미 심의관의 발언대로 국적 구분 없이 건립될 경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입은 피해 내용이 일본인 강제징용 사실 등과 뒤섞이면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옴.
◎ 지난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시마를 찾았음. 하시마에서 방송인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에 관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탄광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내용만 강조하는 현지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어야 했음.
◎ 이날 방송에서 서경덕 교수는 일본이 발행한 하시마 홍보책자에서 강제 징용에 대한 단어는 없다고 설명함. 서 교수는 “(일본이) 독일과의 역사의식이 많이 차이난다”면서 “독일 촐페라인 탄광은 과거 사실 그대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 어떤 나라도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지 않았다”라고 말함.
◎ 두 사람은 하시마에서 희생된 한국인 100여명(추정)의 유골이 옮겨져 있는 다카시마도 찾았음. 일본 기업이 세웠다는 한국인 공양탑을 찾아 나섰지만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공양탑을 찾았지만, 실체는 너무도 처참했음. 입구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곳을 통과해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곳에 외롭게 공양탑이 세워져 있었음.
◎ 일본이 사망한 한국인에 대한 서류까지 불태워, 신원까지 파악할 수 없게 만든 사실도 전해짐. 서 교수는 “하시마에서 다카시마로 옮겨올 때 왜 돌아가셨고 언제 돌아가셨는지 써 있는 위패를 이쪽으로 옮기기 전에 불태워버렸다.”며 “현재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는지조차도 자료가 안 남아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밝힘.
◎ 방송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됐던 피해자의 인터뷰도 공개됐음. 16살 어린 나이에 끌려갔다는 할아버지는 “나이가 어릴 수록 좋다더라”며 말문을 열었음.
◎ 그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하시마에서 한 일은 굴을 뚫어 나아가는 일이다. 옹벽 바닥에 아우성치는 소리가 났다. 배고파서 쥐 나서 못하겠다는 것이었다”라고 증언함.
◎ 무한도전 제작진이 “일본에서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자원해서 왔다고? 하시마에?”라고 되물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음.
◎ 방송이 나간 이후 <무한도전> 시청자 게시판에는 하시마에 대한 실체를 뒤늦게 알게됐다는 내용과 정부의 외교력을 질타하는 글들이 올라옴. ‘다카시마의 공양탑 정비를 지원하고 싶다’, <무한도전>에서 일본 강제징용에 대한 특집을 다뤄줬으면 한다는 글도 있음.
◎ 나선화 문화재청장께 질의하겠음.
◎ 지난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 방송이 논란 속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섬을 찾아 강제징용 등의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함. 이후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
◎ 하루 12시간씩, 섭씨 40도가 넘는 지하갱도에서의 석탄 채굴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만 약 800명이고 공식 사망자수도 122명에 이르지만 일본이 1914년 하시마 탄광을 폐쇄하면서 강제동원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해 납골시설을 없애고 유골을 임의로 처리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음.
◎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정부의 대응임. 일본의 하시마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이 있음. 외교 당국에서 자화자찬 했던 ‘강제노동’ 문구 표기에 대해 일본 외부성은 등재 직후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함. 역사수정주의를 앞세운 일본의 치밀한 준비에 대해 우리 정부가 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임. 당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당시에 어떻게 대응했나?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 일본의 강제동원 역사 왜곡에 대한 진상을 알려야 함. 그렇지 않으면 후쿠오카 아소탄광 11만명, 홋카이도 고노마이 광산 15만명, 아키타현 고사카 광산 1만 3000명,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 1000여명 등 더 끔찍한 강제징용 역사들이 언제 또 다시 미화될지 모름. 우리의 상처가 일본의 영광이 돼선 안 됨.
◎ 정부는 13일 하시마 등 조선인 강제동원 산업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대한 맞대응으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한다고 밝힘. 문화재청은 지난달 31일 마감된 ‘2016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 공모’에 접수된 등재 신청 후보 12건 가운데 ‘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 33만6797건이 포함됐다고 13일 밝혔음. 향후 추진 계획과 가능성은 어떠한가?
◎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주무부처로서 관련 부처와 국회, 언론 등의 원활한 협조를 통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임.
<질의자료>
◎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 떨어진 작은 섬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이 섬은 일제강점기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때문에 ‘지옥도’로 불림.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1890년 사들여 해저탄광을 개발했음. 수백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강제동원돼 고통을 겪었고 확인된 사망자만 100명이 넘음.
◎ 하시마는 지난 7월5일 한·일 양국이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합의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 지난주 방영된 MBC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하하와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는 논란 속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를 찾았음. 일본이 강제징용의 역사를 지운채 하시마를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곳”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탄광”이라며 홍보하고 있는 현실을 접하면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울분을 토함.
◎ 일본 나가사키 서남쪽 해저 탄광인 하시마, 일명 군칸지마(軍艦島)는 일본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주변국들에겐 침략 피해의 상징임.
◎ 이곳에 투입된 노동자는 주로 조선인이나 중국인들로, 외부와 격리돼 하루 12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음. 1925~1945년 이 섬에서 숨진 조선인은 122명에 이름. 살해되거나 폭행·학대로 숨진 조선인도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됨.
◎ 2012년 10월4일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 보고서를 공개함. 위원회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면서 하시마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숫자가 해마다 늘어 1943~1945년에 500~800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확인된 사망자는 122명에 달한다”고 밝힘.
◎ 위원회는 17세 이상 조선인 사망자(92명) 중 폐렴과 천식 등 각종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28명(30), 타박상·골절 등 외상 사망자가 13명(14), 질식·압사 등 매몰사고 사망자가 17명(18.5)이었다고 밝힘.
◎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중 일부는 1945년 9월 인근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돼 방사능에 노출되기까지 했음. 하시마 탄광은 1974년 폐광돼 무인도가 됨.
◎ 일본 정부는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치밀하게 추진함.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나가사키현의 나가사키 조선소 등 현재 가동 중인 시설과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 등 8개현에 걸친 28개 시설·유적으로 구성돼 있음.
◎ 일본은 2009년 1월5일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인 규슈·야마구치 지역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함. 2012년 7월3일에는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위한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고 도쿄서 첫 회의를 개최함. 같은해 9월20일 세계유산조약과 관련한 정부기관 연락회의에서 기타큐슈(北九州)시의 야하타(八幡) 제철소 등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공식 결정함. 등재 목표 시기는 2015년으로 발표함.
◎ 당시 한국 정부는 ‘이웃 국가의 아픔과 관련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철회를 요구함.
◎ 한국의 반대에도 일본은 지난해 1월 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공식 제출함. 일본은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와 관련 지역’으로 명칭을 붙이고 당초 잠정 목록에 없었던 ‘등재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하는 꼼수를 부림.
◎ 1940년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제외시킴으로써 과거 어두운 역사를 덮으려 한 것임. 지난 5월5일 일본 정부는 전국에 흩어진 23개 산업시설을 모아 일괄추천하는 방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등록 권고를 받아냄. 한국과 일본은 7월5일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하고, 이들 시설의 유산 등재에 합의함.
◎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과거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자신들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일본의 입장 발표문을 주석(footnote) 형식으로 등재 결정문에 명시함.
◎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내려진 후 하루만에 말을 바꿨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하지 않았다고 밝힘.
◎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7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마를 비롯한 7 시설에 대한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인함. 그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졌을 때 산업유산 시설에 조선인 동원 문제가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힘.
◎ 자민당은 같은달 15일 국제정보검토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합동회의를 열고 사토 구니(佐藤地)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부 시설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역했다고 언급하면서 제기된 논란을 의제로 다룸. 이날 회의에서는 ‘징용은 강제노동이 아니다’는 뜻을 제대로 국제사회에 알리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는 방안을 검토함.
◎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하면서 등재 명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데 이어 조선인이 강제노동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또 있음.
◎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시설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일본인 등 국적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함. 지난 7월16일 <아사히신문>은 전날 열린 일본 자민당의 외교부회에 출석한 신미 준(新美潤)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유네스코 회의에서 약속한 피해자 추모 조치의 ‘피해자’ 범위와 관련해 “출신지에 관계없이 탄광이나 공장 등에서 사고·재해를 당하거나 사망한 분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함. 이는 향후 추모하게 될 ‘피해자’의 범위에 한반도 출신뿐 아니라 일본인까지 포함시킨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아사히는 해석함.
◎ 정보센터 등의 추모시설이 신미 심의관의 발언대로 국적 구분 없이 건립될 경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입은 피해 내용이 일본인 강제징용 사실 등과 뒤섞이면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옴.
◎ 지난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시마를 찾았음. 하시마에서 방송인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에 관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탄광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내용만 강조하는 현지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어야 했음.
◎ 이날 방송에서 서경덕 교수는 일본이 발행한 하시마 홍보책자에서 강제 징용에 대한 단어는 없다고 설명함. 서 교수는 “(일본이) 독일과의 역사의식이 많이 차이난다”면서 “독일 촐페라인 탄광은 과거 사실 그대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 어떤 나라도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지 않았다”라고 말함.
◎ 두 사람은 하시마에서 희생된 한국인 100여명(추정)의 유골이 옮겨져 있는 다카시마도 찾았음. 일본 기업이 세웠다는 한국인 공양탑을 찾아 나섰지만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공양탑을 찾았지만, 실체는 너무도 처참했음. 입구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곳을 통과해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곳에 외롭게 공양탑이 세워져 있었음.
◎ 일본이 사망한 한국인에 대한 서류까지 불태워, 신원까지 파악할 수 없게 만든 사실도 전해짐. 서 교수는 “하시마에서 다카시마로 옮겨올 때 왜 돌아가셨고 언제 돌아가셨는지 써 있는 위패를 이쪽으로 옮기기 전에 불태워버렸다.”며 “현재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는지조차도 자료가 안 남아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밝힘.
◎ 방송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됐던 피해자의 인터뷰도 공개됐음. 16살 어린 나이에 끌려갔다는 할아버지는 “나이가 어릴 수록 좋다더라”며 말문을 열었음.
◎ 그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하시마에서 한 일은 굴을 뚫어 나아가는 일이다. 옹벽 바닥에 아우성치는 소리가 났다. 배고파서 쥐 나서 못하겠다는 것이었다”라고 증언함.
◎ 무한도전 제작진이 “일본에서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자원해서 왔다고? 하시마에?”라고 되물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음.
◎ 방송이 나간 이후 <무한도전> 시청자 게시판에는 하시마에 대한 실체를 뒤늦게 알게됐다는 내용과 정부의 외교력을 질타하는 글들이 올라옴. ‘다카시마의 공양탑 정비를 지원하고 싶다’, <무한도전>에서 일본 강제징용에 대한 특집을 다뤄줬으면 한다는 글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