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의 국정감사자료
'구조의 최전선' 소방·경찰관의 죽음… 지켜주지 못한 마음
최근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한 소방관이 자살하면서 소방·경찰관들의 마음건강이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반복되는 재난 현장에서 겪는 충격과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번아웃은 켜켜이 쌓여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개인적 취약성이 아니라 직무 특성에서 비롯된 구조적 위험이라고 지적한다.
8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 자살자 수는 2020년 12명, 2021년 17명, 2022년 21명, 2023년 11명, 지난해 17명이었다. 경찰관 자살자 수는 2020년 24명, 2021년 24명, 2022년 21명, 2023년 24명, 지난해 22명, 올해 7월까지 16명으로 집계됐다.
소방·경찰관의 자살 문제는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완화를 위한 중재에 대한 통합적 문헌고찰' 논문에 따르면 경찰관의 우울증과 PTSD 진료 인원은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각각 67%와 46% 증가했다. 소방관 역시 PTSD 증상 유병률이 늘어나고 있으며 약 4.4%가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선진국들에선 경찰·소방관의 트라우마 관리와 자살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테러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의 트라우마 후유증을 평생 추적하고 관리하는 '자드로가법(Zadroga Act)'을 제정했다. 캐나다 왕립기마경찰(RCMP)은 PTSD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사관생도부터 퇴역 군인까지를 대상으로 한 심리적 트라우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있지만 인력·예산이 부족한 상태다. 올해 기준 소방의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사 수는 128명, 예산은 42억9900만원이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실은 소방공무원들의 특수 직무 환경을 고려해 전문 상담사가 직접 소방서나 훈련 현장을 방문해 상담을 제공한다.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건수는 2022년 6만3416건, 2023년 7만759건, 지난해 7만9453건, 올해 6월까지 5만5803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의 '마음동행센터' 상담사 수는 38명, 예산은 35억9800만원에 불과했다. 마음동행센터는 2014년부터 의료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경찰관의 직무스트레스 전문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마음동행센터 이용인원·횟수는 2022년 1만4218명·2만5974건, 2023년 1만8912명·3만8199건, 지난해 1만6923명·3만8197건, 올해 6월 8747명·1만8813건이었다.
송 상담사는 "경찰은 부정적인 사건을 많이 접하다 보니 지인이나 가족에게조차 정신적 고통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나 유가족에 비해 경찰은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라는 불문율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상담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송 상담사는 경찰관의 정신 건강을 위해 장기적이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않는 경찰관 중 일부는 극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인력과 인프라를 꾸준히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강원도의 경우 센터가 춘천 한 곳뿐이라 강릉이나 동해 경찰관들은 접근조차 어렵다"며 예산 확충의 시급성을 언급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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