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878억원짜리 영빈관 신축 계획을 철회한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계속 이를 추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축 공사를 맡았던 현대건설은 관련 문서를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2022년 5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직후 대통령비서실은 외빈 접견 및 행사를 위한 영빈관 신축을 추진했다. 대통령 집무실·관저 졸속 이전으로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때였는데, 기존 청와대 영빈관을 두고 용산에 새로 영빈관을 짓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사업 수혜자는 국민’이라며 영빈관 신축에 사업비 878억6300만원을 몰래 편성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예산 편성 사실을 몰랐다.

2022년 9월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대통령실은 “국익을 높이고 국격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해명했지만, 앞서 김건희씨가 “(영빈관을) 옮길 거야”라고 언급하는 녹취록이 공개된 터여서 여론의 역풍은 거셌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익” 해명을 내놓은 같은 날 저녁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대통령 지시라며 서면 브리핑까지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철회 지시 발표 뒤에도 영빈관 신축을 계속 추진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영빈관 신축 회의에 참여한 업체 관계자로부터 확보한 회의 내용을 14일 공개했다.

업체 관계자가 작성한 메모를 보면, 2022년 10월 말 용산 대통령실 9층 경호처장 집무실에서 김용현 경호처장, 김종철 경호처 차장, 현대건설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빈관 신축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현대건설은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의 신축 영빈관 조감도와 도면 등 제안서를 들고 왔다. 영빈관 신축 관련 회의는 지난해 4·10 총선 직전까지 계속됐다.

대통령 집무실·관저 이전 의혹 관련 국정감사를 앞두고 윤 의원실은 현대건설 쪽에 당시 제안서를 제출해달라고 했지만, 현대건설은 “건물 내·외관을 간단히 스케치한 수준이었다. 논란이 되자 관련 문서를 담당 팀장이 임의로 삭제했다”고 윤 의원실에 밝혔다. 윤 의원은 14일 열리는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윤영준 전 현대건설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영빈관 신축 계획과 도면 삭제 경위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