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사회봉사단을 하면서 한양대 법학고 권오현
이번 2004년 봄학기가 어느덧 결승점만을 앞두고 있다. 한학기를 되돌아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매주 주말만 되면 나의 역마끼(?)를 잠재워 주었던 사회봉사 활동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덧 4학년이 될 때까지 다람쥐 쳇바퀴마냥 학교만 오고갔던 내게 ‘사회봉사활동’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은 다름 아닌 ‘법률소비자 연맹’이라는 일종의 NGO단체였다. 이 단체가 위치한 곳은 서초동으로 법대생이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대법원과 검찰청 건물을 오고가며 볼 수 있다는 점에 구미가 땡겼고, 혹시나 이번기회에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법률지식들을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인적 사정이 있어 남들보다 하루 일찍 법률소비자 연맹을 찾아가 OT를 시작했던 지난 3월 19일을 시작으로 이번 5월 마지막 주 금요일인 28일 까지 중간고사 기간을 빼먹고는 매주 금요일마다 그곳에 들렀었다. 처음에 지원한 분야는 ‘재판 모니터링’ 부분인데 그곳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댄다. 거기서 지정해 주는 일을 하면 되었는데, 나는 주로 학술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발표회장에 비치되어 있는 발표문등을 가져오는 일을 했다. 이것도 하나의 사법정의의 구현을 위한 그 단체의 활동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는 ‘따끈따끈한’ 정보 수집이라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이러한 중요한 사명(!)을 띠고 금요일 오후(주로 PM2:00)마다 학술 세미나가 열리는 서울 시내를 배회하고 다녔다. 주위 친구들은 그렇게 금요일마다 돌아다니면 피곤하지 않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주말마다 몰려오는 나의 역마끼를 잠재워 주면서 또한 각 학술대회에서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나 스스로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겁게 서울 시내를 왔다갔다 했다.
정확한 날짜가 제대로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찾아 다녔던 곳은 전경련회관, 국가인권위원회,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오작교역에 있는 한국방송 예술인회관, 서초구청 옆의 외교센타, 그리고 우리학교 백남학술정보관(이곳은 우연히 우리학교 축제 기간에 한양대 제3섹터에서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등등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이곳 모두에서 각종의 학회에서 여는 세미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모두 방송으로, 신문으로, 말로만 듣던 곳이라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의 입장에서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날 뿐이었다.
이들 학회를 쫓아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점들은 정말이지 우리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중요한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세미나를 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면 어김없이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이들의 논문을 적은 자료들이 배포되는데 이들 모두가 우리의 현실을 헤집고 전망과 대안을 제시해 주는 귀중한 정보들인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하나같이 모르고 지내고 있다. 더군다나 이사회는 일반 대중들이 그러한 정보들에 귀를 닫고 살아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어떤 세미나를 찾아가봐도 그들 학회원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었다. 일반 대중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행사임에도 행사장에는 늘 빈자리가 반을 넘고 있었다. 그들 학회에서 발표하는 수많은 논문들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으면 살아가는데 유용한 정보이고 더욱이 이러한 정보들은 인터넷상으로도 찾을 수 없는 자료들로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고, 알고 있으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없는데도 학회가 열린 곳의 주위의 행인들은 무관심할 뿐이었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대중들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유도하려는 그들 단체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슨날 어떠한 단체가 어디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행사를 가진다는 문구를 정작 찾을 수 있는 곳은 그곳 세미나 장소에서도 귀퉁이 조그마한 곳에 붙여진 작고 귀여운(?)안내문구 였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상에서 뒤지고 뒤져서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재정마련이 어려운 단체들이 대부분이었고 굳이 관계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그 세미나를 알릴 필요가 없기는 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그들 학회원들은 아니지만 일반인들도 조금이라도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홍보 되었다면 그들도 참석하여 유용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단계인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과정에서도 각 NGO단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 세미나의 참석을 적극 유도하는 방안도 적극 이용해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단체들이 일반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좀더 홍보에 관심을 귀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본업은 원래 ‘재판모니터링’인데, 부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실제로 법원을 다녀온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시골에서 올라온 녀석이 서초동 대법원을 다녀온 경험들을 빠뜨릴 수는 없다.
법원에 가서 한 일은 재판모니터링와 마지막으로 갔던 5월 28일에 했던 직접 소장을 써보는 일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법대생이면서도 이번 재판모니터리을 하기 전에는 법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나름대로는 준법정신(?)에 투철하여 법원에 드나들 일이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처음 법정안에 들어가서 받은 느낌은 강렬하게 권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법정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높은 단상에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법관,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앉아 있는 피고인 석, 증인석 그리고 사람의 기분을 주눅들게 하는 어두운 톤의 법정실내의 밝지 않은 조명과 벽장식 등등이 그것이었다. 비록 내가 꿈꾸는 자리가 법관의 자리이건만 아직 보통의 평범한 사람의 신분에서 바라보이는 저 자리가 그렇게 높아 보이다니...
처음으로 사건을 방청하면서 참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은 형사사건이었는데 변론 과정들을 추측하건데 내 또래의 남자가 술에 취해 피해자를 성폭행한 일인 듯 했다. 피고인은 많은 후회를 한다는 듯 최후 변론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특히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했는데 그것을 듣고 있던 그 피고인의 부모님인 듯한 분들이 엉엉 우시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 사건은 그들 사건 당사자들의 합의로 끝나고 형사처벌이 감해지는 것으로 끝났는데, 더욱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같이 갔던 우리들 학생들 몇몇이 재판장에 방청을 하고 있으니까 나이가 지긋하신 재판장님이 우리 학생들만 남기고 관계인들을 모두 재판장 밖으로 내보내게 한 후 학생들을 위해 판결문을 손수 읽어주시면서 설명까지 덧붙여 주시면서 대략적인 사건의 내용을 말해주셨던 것이다. 나중에 이러한 일을 법률소비자 연맹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이곳 서울 재판장에서는 학생들이 자주와서 모니터링을 해서인지 많이 친절해졌다면서 아직도 모니터링이 없는 지방의 재판장에서는 공개재판에서 관계없는 일반인들의 방청을 막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고 했다. 이런게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 바꿔가는 힘이라고 하는 것일까...
법원에서 ‘소장’쓰는 일은 무척이나 쓰디 쓴 기억으로 남아있다. 명색이 법대생인데 소장쯤이야하고 달려들었는데 이게 웬걸... 지금 기억나는 소장 유사종류의 서류들이 법원 로비에서만 30가지가 넘는 것 같았고 그 형식에 있어서도 각각이 따로 되어 있으며 그 예시로 게시되어 있는 것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소장 등을 쓸 때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맡기면 장땡(?)이지만 대신 돈(보통 기본이 소장 1장에 3만원이상이라고 한다)이 든다.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일반인들이 써도 될만큼 돈도 크지 않고 단심에 그치고 관계서류만 제대로 구비한다면 굳이 소송비용이 늘어나지 않을텐데, 소액사건도 큰 코다친고 소장하나 쓰는데 너무 복잡했다. 우선 소장 용지형식은 간단했다. 그렇지만 소가에 따른 수수료 산정 과정이 일반인들이 자칫 잘못하면 실수 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예시가 적었고 송달료 산정에 있어서도 그 액수가 소가에 비해 너무 큰 것 같았다. 나중에 법률소비자 연맹에 돌아와서 실장님께 들은 예기지만 그 송달료 산정에 있어 기본이 8회(10회였는지 기억이 잘 안남)를 기준으로 5만 6천원이었는데, 소액사건의 경우 1회정도의 송달로 재판상 송달절차가 모두 끝나는데도 나머지 남는 송달료는 모두 법원에서 꿀꺽해버린다고 하셨다. 이러한 잘못된 부당이득을 아직은 받아낼 도리가 없지만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이라고 지적하셨다. 소장을 쓰는데 있어 또 한가지 더 짚고 싶은 점은 소장의 필요적 기재부분과 임의적 기재부분에 대한 예시를 적어놓은 예시라든지 사건에 어떠한 첨부서류가 필요한지에 대한 안내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법원담당 공무원분들께 여쭤보면 되지만 그들은 형식적 심사만 할 뿐 실체적인 문제는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소장을 써서 담당공무원께 여쭤보고 의기양양하게 가지고 돌아갔더니 실장님이 이것 가지고 어떻게 판사가 제대로 하겠냐며 성화를 내셨다. 제대로 예시만 되어 있다면 이런 꾸중(?)은 안들었을 터인데...
어째든 2004년 봄학기 사회봉사의 기간은 이렇게 지나갔다. 학교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재미있는 일을 이곳 법률소비자 연맹을 통해서 간접경험이나마 많이 해볼 수 있는 데에 대해 감사하다. 가끔씩내가 지각도 하고 한창 사무에 바쁠 때에 가도 불평안 하시고 챙겨 주신 법률소비자 연맹의 구부장님, 윤부장님, 실장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혹시 2학기에도 사회봉사를 신청해서 다시 ‘법률소비자 연맹’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내 후배님들에게라도 좀더 법률에 관련된 일들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을 마련해 주셨음 하는 바램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 생활을 하는데 유용한 것은 몸소 겪어본 법률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