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봉사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한양대 법학과 김광욱
<법률소비자연맹>
지난 여름, 우연찮은 기회로 두 번의 사회봉사를 했고, 대학생활 마지막 1학기인 이번 학기에도 사회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회봉사는 학점부담도 적거니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큰 배움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내 전공을 살리는 동시에 전공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사회봉사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고, 이전가지 강한 흥미를 끌었음에도, 조건미달(사회봉사 2학점 이상 이수자만이 신청 가능했기 때문에)로 신청하지 못했던 재판모니터링을 신청하게 되었다.
재판모니터링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담당한 기관은 법률NGO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그리고 그 자부심이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법률소비자연맹’이었다. 3월 24일에 있었던 사회봉사참가자에 대한 전체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연맹 총재님의 강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 그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찾아간 사무실의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법은 여전히 우리네에겐 너무나도 멀다. 법을 공부하는 대학생에게도 법은 멀다. 법이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검사와 판사와 판ㆍ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전부가 아닐가 싶을 정도로 법은 아직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멀고, 무섭고, 어려운 존재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은 그런 시민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법률에 대한 설명과 도움, 그리고 소위 ‘엘리트’임을 자부하는 위정자(적절한 표인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들을 감시하고 ‘못 살게’구는 활동을 심 수년 동안 해왔다.

<형사재판모니터링>
2005년 가을, 민사소송법 수업과제로서 주어졌던 민사재판 방청 이후로 2년여 만에 재판과정 방청을 위해 4월 3일 화요일 오후, 서울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사건은 매일 있고, 공판도 매일 있다. 그 중에서 형사재판의 방청을 원했기에 형사사건 법정을 하나 골라 찾아 들어갔다. 그 곳은 약식기소로 벌금형 등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들을 다루는 곳이었는데, 공판이 벌어진 세 시간 동안 나는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세 시간 동안 처리된 사건의 수는 무려 21건이었다. 세 시간 동안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법원까지 가는 일들이 많은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과거 형법 수업에서 오영근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과잉범죄화와 과잉형벌화가 생각난 것은 너무나도 당여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스물 한건의 사건 중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인이 있었던 사건은 불과 세 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건들은 모두 피고인 스스로 변호하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형행 국선변호인제도의 문제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중범죄에 대해 국선변호인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평범하고 선량한 국민들이 어쩌다 형사재판을 받게 된다면, 그들은 중범죄자가 아니기에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오리혀 중범죄를 저지를수록 보호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장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마지막 사건이었다. 상해로 기소된 반백의 피고인이 피고인석에 서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데, 그 목소리는 매우 더듬거렸고, 어렵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은 방청이석에는 그 보다도 더 새하얀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앉아 있었다. 그 분은 피고인의 부친으로, 피고인이 언어장애로 억울한 사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같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 피고인이 상해로 기소된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노점상으로 풀빵을 팔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렵던 피고인의 바로 여에서 노점을 하던 피해자는 그렇게 매일같이 피고인을 놀려댔다고 한다(제대로 말을 하기 어려운 피고인이 그의 눈에는 그렇게 만만히 보였을 것이다). 결국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시달리던 피고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주먹을 날렸고, 피해자는 이에 상해로 고소했다. 약식기소에서 검찰은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피고인과 그 부친은 이것이 너무 과하다고 감액해줄 것을 원했다. 그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을까? 순간 모욕죄의 법리나 정당방위의 법리를 떠올렸던 나는 얼굴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저 두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또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과연 어느 변호사가 ‘150만원짜리 벌금사건을 감액시키려고’ 변호를 하려고 했을가?
‘배워서 남주려고’ 공부하던 법학도들은 다들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 과거의 고시생들, 과거의 법학도들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정말 얼굴은 붉어지고 더 이상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변호사 1,000명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 변호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그러싸한 ‘한 건’을 터뜨리기 위해 전전하고 있는 것을 아닐지? 법정을 나서는 순간만큼 그 어느 때보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돈 못 버는 변호사이면 어떤가, 법리에 대한 이해와 탐구가 깊지 않은 변호사면 어떤가. 제1선에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국가기관의 업무 자체가 서비스업이지 않은가?>
국가의 권력작용은 결국에는 서비스이다. 서비스의 제공자는 국가이고, 그 서비스를 향유하는 것이 국민, 그리고 그 대가(代價)로써 주어지는 것이 조세(租稅)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국가권력의 서비스는 조금 웃기는 데가 있다. 무소불위의 독점기업이라는 점, 고객이 적극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 향유자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점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갖가지 이론들이 등장했다. 정치론이 그렇고, 정부론이 그렇고, 행정론이 그렇고, 행정법이론도 그렇지 않은가.
이런 갖가지 이론이 국가권력작용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국가의 권력적 행정행위의 효력을 설명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국가는 국민의 조세로 운영되며, 국민을 지키고 도와주는 서비스기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 법원까지도 에외는 아니다. 따라서 어떠한 국가기관이든 그들은 서비스향유자인 국민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기관이 이를 제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고객은 서비스제공자에 대해 시정과 올바른 이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NGO들은 이러한 고객의 입장에서 서비스제공자에게 올바른 요구를 할 수 있는 장치로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번 학기에 활동한 법률소비자연맹도 이러한 견지에서 국가가 최상의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그러고 보니 사회봉사도 Community Service, 서비스다).

<한 학기의 활동을 마치며>
형사재판 모니터링 외에도 민사소액사건 모니터링, 그리고 법률소비자연맹 본부에서 사무업무를 보조하는 활동까지 한 시간 한 시간의 활동이 큰 경험이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사회봉사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로부터 도움을 받는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나는 이번 사회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이야기하면 떳떳하게 대답할 수 없다. 창피한 변명이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낮 시간은 거의 다 가버리는 처지에 일주일에 한번 참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시험이 다가온다거나,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내가 사회봉사 자체를 얕잡아본 나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언제가 될지, 그리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비겁한 변명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다음에는 잘 해야지’라고.
이렇게 스스로의 잘못으로 힘겹게 시간을 채우던 나에게 많은 조언과, 흔쾌한 협조를 해준 법률연맹의 분들에게는 정말로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