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 -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유병준
법률연맹
2009-03-13 00:00:00
383
이제 대학생이라고, 고등학교 때처럼 교실에 박혀서 책만 파는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뭔가 색다르고 보람 있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사회봉사I 교과목을 신청했다. 원래의 의도는 장애우분들이나 노약자 분들, 소년소녀가장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지만 “시민단체”의 “법률소비자연맹”이 봉사기관으로 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법과 재판에 관심이 있었고 법정에 들어가 실제재판을 방청해 본다는 내용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색다른 공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봉사활동을 하러 법률소비자 연맹에 찾아갈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직접 하는 일은 이전한지 얼마 안 되는 사무소의 잡일을 처리하는 것이거나 컴퓨터 자료수집이었지만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일하시는 여러분들 특히 김대인 총재님께서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일하는 데도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었다. 세 번 쯤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이제 법정에 가서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다. 법정모니터링은 법원에 가서 재판을 보고 법정에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나 법관들의 행동에 대해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봉사자들이 모니터링 해서 얻은 결과와 통계는 나중에 국정감사나 국회의원 등에 의해 사법권을 개선시키는 데 쓰인다고 한다. 법정 역시 총 세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서울지방법원은 집에서 가까운 교대역에 고등법원과 함께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매일 보고 지나치면서도 직접 방문한 적은 처음이어서 긴장이 됬다.
처음 법원에 갔을 때는 법원의 표지판들 때문에 무척 헤맸다. 지방법원 형사법정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만 해도 엘리베이터용과 계단용이 따로 있어 괜한 주눅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설였었다. 출입구에는 검색대가 있는데 정말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잘 몰라 한참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떨렸지만 침착한 표정을 짓고 들어갔었다. 내가 죄를 지어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리고 주눅이 들었었는지..... 그리고 법정 옆에 붙은 게시판을 보고 들어갈 법정을 정했는데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몰라서 선뜻 손잡이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태연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잠시 후에 따라 들어갔다.
법관들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무척 형식적이고 차가웠다. 물론 인간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법정보다는 법에 의해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검사와 판사는 비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피고인이 말하는 동안 검사나 판사가 말을 가로막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법관들은 방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또한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앉은 자세에 주의를 주기도 하고 이번 법정에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으니 딴 곳으로 가 보라고 쫓아내기까지 했다. 하루종일 원고와 피고, 범죄와 관련된 심각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만 대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모니터링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역시 고쳐져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법정모니터링을 끝내고 생각해 보니까, 뭔가 약간 안타까운 현실을 본 것 같고 그 사실을 고쳐가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뿌듯한 느낌뿐만 아니라 새로 배운 점도 많았다. 공판이 이루어지는 절차, 결과 등등 궁금했던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법의 필요성, 역할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그것들이 모이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전공을 살려 컴퓨터를 손봐 성능을 조금 더 좋게 하거나 <휴대전화 요금 인상 논란>이란 주제로 언론 모니터링을 하기도 했는데 역시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그분들은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하는데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법정에서 화학공장과 운반회사와의 민사재판 같은 재판을 보니까 유기화학물품이 어디서 변질되었느냐를 가지고 따지는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재판장님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얼버무릴 뿐이었다. 이런 분야에 능숙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법관이 된다면 더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한 학기동안 학과 공부하랴 모니터링 봉사활동 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값진 활동이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해서 뿌듯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하던 날이 생각난다.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님의 열강을 들으면서 열심히 사회봉사활동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간 것이다. 시작은 학점을 채우기 위한 사회봉사였지만 앞으로는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굳이 봉사영역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봉사가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인권문제나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이나마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봉사를 해보고 싶다. 나에게 정말 값진 경험을 얻게 해준 사회봉사I...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러 법률소비자 연맹에 찾아갈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직접 하는 일은 이전한지 얼마 안 되는 사무소의 잡일을 처리하는 것이거나 컴퓨터 자료수집이었지만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일하시는 여러분들 특히 김대인 총재님께서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일하는 데도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었다. 세 번 쯤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이제 법정에 가서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다. 법정모니터링은 법원에 가서 재판을 보고 법정에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나 법관들의 행동에 대해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봉사자들이 모니터링 해서 얻은 결과와 통계는 나중에 국정감사나 국회의원 등에 의해 사법권을 개선시키는 데 쓰인다고 한다. 법정 역시 총 세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서울지방법원은 집에서 가까운 교대역에 고등법원과 함께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매일 보고 지나치면서도 직접 방문한 적은 처음이어서 긴장이 됬다.
처음 법원에 갔을 때는 법원의 표지판들 때문에 무척 헤맸다. 지방법원 형사법정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만 해도 엘리베이터용과 계단용이 따로 있어 괜한 주눅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설였었다. 출입구에는 검색대가 있는데 정말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잘 몰라 한참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떨렸지만 침착한 표정을 짓고 들어갔었다. 내가 죄를 지어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리고 주눅이 들었었는지..... 그리고 법정 옆에 붙은 게시판을 보고 들어갈 법정을 정했는데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몰라서 선뜻 손잡이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태연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잠시 후에 따라 들어갔다.
법관들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무척 형식적이고 차가웠다. 물론 인간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법정보다는 법에 의해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검사와 판사는 비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피고인이 말하는 동안 검사나 판사가 말을 가로막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법관들은 방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또한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앉은 자세에 주의를 주기도 하고 이번 법정에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으니 딴 곳으로 가 보라고 쫓아내기까지 했다. 하루종일 원고와 피고, 범죄와 관련된 심각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만 대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모니터링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역시 고쳐져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법정모니터링을 끝내고 생각해 보니까, 뭔가 약간 안타까운 현실을 본 것 같고 그 사실을 고쳐가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뿌듯한 느낌뿐만 아니라 새로 배운 점도 많았다. 공판이 이루어지는 절차, 결과 등등 궁금했던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법의 필요성, 역할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그것들이 모이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전공을 살려 컴퓨터를 손봐 성능을 조금 더 좋게 하거나 <휴대전화 요금 인상 논란>이란 주제로 언론 모니터링을 하기도 했는데 역시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그분들은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하는데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법정에서 화학공장과 운반회사와의 민사재판 같은 재판을 보니까 유기화학물품이 어디서 변질되었느냐를 가지고 따지는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재판장님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얼버무릴 뿐이었다. 이런 분야에 능숙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법관이 된다면 더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한 학기동안 학과 공부하랴 모니터링 봉사활동 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값진 활동이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해서 뿌듯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하던 날이 생각난다.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님의 열강을 들으면서 열심히 사회봉사활동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간 것이다. 시작은 학점을 채우기 위한 사회봉사였지만 앞으로는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굳이 봉사영역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봉사가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인권문제나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이나마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봉사를 해보고 싶다. 나에게 정말 값진 경험을 얻게 해준 사회봉사I...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