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봉사기관, 활동내용에 대한평가-서울대 언론정보학 우란
법률연맹
2009-03-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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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봉사활동을 신청한 동기는 순수하지 않다. 이제 4학년인데, 봉사활동이라고는 한번도 건드려본 적도 없어 위기감이 발동한 것이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취업해야 할텐데, 신문에서는 봉사활동이 중요하네 어쩌네 하고 있는데, 봉사심이라곤 별로 있지도 않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덧붙일 거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학교에서 ‘사회봉사’를 교과목으로 신설해주었고, 나도 졸업 전에 이 기회를 이용해서 취업 때 불리하지 않도록 서류 하나 정도 늘려보자 하는 심산에서, 이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와 법률소비자연맹(이하 법률연맹) 간의 인연이 시작한 계기다.
법률연맹 봉사활동 첫 오리엔테이션 날, 굉장히 많은 봉사학생들 때문에 놀랐다. 넓은 강당을 꽉 채운 학생들, ‘이들은 나와는 다른 진정성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하면서도 왠지 부끄러웠다.
법률연맹 사무실에 처음 들른 날, 트럭 20대를 싣고 옮겼다는 이삿짐들이 법률연맹의 새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는데도 사무실에서 이삿짐 정리에 한창이었고, 나처럼 사무실을 찾아온 학생들은 1센티는 쌓인 것 같은 먼지도 닦아내고 물청소도 하고 여러 노력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이 참으로 오랜만인 나로서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왠지 모를 기쁨을 주었다. 내 방 청소도 제대로 안하지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의 기쁨에 조금씩 깨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법률연맹에서 주로 한 봉사활동은 ‘언론 모니터링’이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할 즈음이 한미FTA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언론 모니터링’의 주제를 ‘한미 FTA와 미디어 시장’이라고 잡고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를 모니터링 하기로 하였다. 내가 언론 모니터링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전공이 언론정보학임에도 신문도 잘 읽지 않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 강제로라도 신문 좀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또한, 언론모니터링은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시간적 제약이 크지 않아서, 수업과 그 외 고정적인 시간 소비가 많은 나로서는 언론 모니터링이 가장 적절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와 전공분야와의 관계를 주제로 잡는 것이 법률연맹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일 주일마다 한번씩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읽고 비교 ․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뉴스를 반 강제로 읽게 되는 점도 나쁘지 않았고, 피상적으로나마 생각했던 각 언론사의 보도 경향도 점차 실질적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얕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배경지식으로 각 신문사를 분석하고 나름 비판하는 작업이 나에게 매우 큰 공부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수업수가 많고, 그 외에 학교에서 근로봉사장학생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이 언론모니터링을 수시로 보고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일 주일마다 모니터링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법률연맹과 제 때에 공유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법률연맹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언론모니터링 담당의 구기용 부장님과 주제를 잡고 나서, 모니터링 자료 제출 때 부장님을 찾아갔을 때, ‘마음 바뀌신 줄 알았어요.’라고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열의를 보이며 부장님과 주제도 상의하고 정했는데, 그 이후로 감감 무소식이었으니 답답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참 죄송한 순간이었다. 봉사활동 결과물이 결국 법률연맹에게 돌아갔지만, 결국 봉사활동이 아니라 내 공부만 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도 클리어 파일을 꽉꽉 채우고 모니터링 내용을 출력하여 법률연맹에 제출했을 때에는 꽤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모니터링했던 활동의 결과물이 법률연맹 어딘가에 남아서 데이터베이스에 담겨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중략> 그 밖에 나는 법률연맹에 몇 번 방문하여 이삿짐 정리와 청소, 의정모니터링 보고서의 교정작업 등의 보조 업무도 행하였다. 작은 활동이지만 내 작은 움직임이 다른 이의 움직임과 함께 하여 매우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갈 수 있었다. 봉사활동은 그런 것이다. 내 첫 동기는 불순했으나,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나서는 첫 동기를 넘어선 선의(善意)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 경험 자체가 매우 큰 공부가 되었다.
이런 나의 봉사활동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역시 법률연맹의 사람들이었다. 학생의 봉사활동의 소중함과 의미를 강조하시던 김대인 총재님은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을 말씀하시며 학생들의 봉사심을 독려하셨다. 아나운서처럼 맑고 힘있는 목소리의 윤소라 부장님도 언제나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하시고 봉사활동에 도움을 주셨다. 구기용 부장님은 나의 부족한 활동도 격려해주시고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법정모니터링을 진행하지 않아서 직접 대하진 못했지만 담당자님(성함을 모름)께서도 학생들의 법정모니터링에 대해서 많은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고 우리들의 활동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주셨다.
법률연맹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첫 손을 내밀었던 나는, 이번 봉사활동을 끝맺으면서 나름 큰 변화를 겪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어디에서건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작은 도움을 만들고 싶다. 어떻게서든 봉사활동확인서 하나 받아볼까 했던 마음이 이렇게 바뀐 것,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
법률연맹 봉사활동 첫 오리엔테이션 날, 굉장히 많은 봉사학생들 때문에 놀랐다. 넓은 강당을 꽉 채운 학생들, ‘이들은 나와는 다른 진정성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하면서도 왠지 부끄러웠다.
법률연맹 사무실에 처음 들른 날, 트럭 20대를 싣고 옮겼다는 이삿짐들이 법률연맹의 새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는데도 사무실에서 이삿짐 정리에 한창이었고, 나처럼 사무실을 찾아온 학생들은 1센티는 쌓인 것 같은 먼지도 닦아내고 물청소도 하고 여러 노력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이 참으로 오랜만인 나로서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왠지 모를 기쁨을 주었다. 내 방 청소도 제대로 안하지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의 기쁨에 조금씩 깨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법률연맹에서 주로 한 봉사활동은 ‘언론 모니터링’이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할 즈음이 한미FTA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언론 모니터링’의 주제를 ‘한미 FTA와 미디어 시장’이라고 잡고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를 모니터링 하기로 하였다. 내가 언론 모니터링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전공이 언론정보학임에도 신문도 잘 읽지 않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 강제로라도 신문 좀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또한, 언론모니터링은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시간적 제약이 크지 않아서, 수업과 그 외 고정적인 시간 소비가 많은 나로서는 언론 모니터링이 가장 적절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와 전공분야와의 관계를 주제로 잡는 것이 법률연맹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일 주일마다 한번씩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읽고 비교 ․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뉴스를 반 강제로 읽게 되는 점도 나쁘지 않았고, 피상적으로나마 생각했던 각 언론사의 보도 경향도 점차 실질적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얕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배경지식으로 각 신문사를 분석하고 나름 비판하는 작업이 나에게 매우 큰 공부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수업수가 많고, 그 외에 학교에서 근로봉사장학생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이 언론모니터링을 수시로 보고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일 주일마다 모니터링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법률연맹과 제 때에 공유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법률연맹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언론모니터링 담당의 구기용 부장님과 주제를 잡고 나서, 모니터링 자료 제출 때 부장님을 찾아갔을 때, ‘마음 바뀌신 줄 알았어요.’라고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열의를 보이며 부장님과 주제도 상의하고 정했는데, 그 이후로 감감 무소식이었으니 답답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참 죄송한 순간이었다. 봉사활동 결과물이 결국 법률연맹에게 돌아갔지만, 결국 봉사활동이 아니라 내 공부만 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도 클리어 파일을 꽉꽉 채우고 모니터링 내용을 출력하여 법률연맹에 제출했을 때에는 꽤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모니터링했던 활동의 결과물이 법률연맹 어딘가에 남아서 데이터베이스에 담겨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중략> 그 밖에 나는 법률연맹에 몇 번 방문하여 이삿짐 정리와 청소, 의정모니터링 보고서의 교정작업 등의 보조 업무도 행하였다. 작은 활동이지만 내 작은 움직임이 다른 이의 움직임과 함께 하여 매우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갈 수 있었다. 봉사활동은 그런 것이다. 내 첫 동기는 불순했으나,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나서는 첫 동기를 넘어선 선의(善意)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 경험 자체가 매우 큰 공부가 되었다.
이런 나의 봉사활동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역시 법률연맹의 사람들이었다. 학생의 봉사활동의 소중함과 의미를 강조하시던 김대인 총재님은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을 말씀하시며 학생들의 봉사심을 독려하셨다. 아나운서처럼 맑고 힘있는 목소리의 윤소라 부장님도 언제나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하시고 봉사활동에 도움을 주셨다. 구기용 부장님은 나의 부족한 활동도 격려해주시고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법정모니터링을 진행하지 않아서 직접 대하진 못했지만 담당자님(성함을 모름)께서도 학생들의 법정모니터링에 대해서 많은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고 우리들의 활동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주셨다.
법률연맹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첫 손을 내밀었던 나는, 이번 봉사활동을 끝맺으면서 나름 큰 변화를 겪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어디에서건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작은 도움을 만들고 싶다. 어떻게서든 봉사활동확인서 하나 받아볼까 했던 마음이 이렇게 바뀐 것,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