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사회봉사활동 소감문 - 건국대 경제학과 이기헌
3학년 1학기, 정말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신청한 사회 봉사활동, 그 중에서도 법률소비자연맹에서의 법정모니터링을 신청하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이번 학기 봉사활동은 학점취득보다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첫 번째 오리엔테이션부터 느낀 것이지만 법률소비자연맹에서의 사회봉사활동은 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배움의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모니터링 방법을 배운 후 서울 고등법원으로 갔다. 법원에 처음으로 가는 것 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긴장 했다. 그러나 법원에 계시는 직원 분들께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금새 편안한 마음으로 법률 모니터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법원은 민사 법원 이었다. 법정 안은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였고 법전이나 교과서로만 봤던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현장을 목도한 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요새 신문기사를 보면 법조계에 여성들의 진출이 매우 활발하다고 하는데, 내가 처음 본 재판 역시 판사와 변호사가 여성 이었다. 여성의 법조계 진출의 활발함을 현장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재판을 보면서 어떤 증인이나 당사자들은 매우 감정적으로 말을 하고, 또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얼버무리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어떤 경우에는 화를 내는 증인도 보았다. 그렇지만 판사는 역시 흔들리지 않고 재판에 필요 없는 말은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표정을 유지했다.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 무관심하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유창한 언변에 넘어가 판단을 그르치진 않겠구나 라고 안도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법원은 형사 법원 이었다. 형사 법정의 분위기는 민사와 사뭇 달랐다. 재판장에 수갑을 찬 사람이 경찰의 호송을 받으면서 오는 경우도 보았고, 성폭행 피해자 가해자의 모습, 야간 폭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재판에서 감정적으로 극한 대립을 했고, 여러 사실 관계도 완전히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안 때렸다는 사람과 맞았다는 사람, 정말이지 감정이 극으로 치 닿고 있었다. 분을 참지 못한 증인은 눈물을 흘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판을 보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재판의 당사자들의 고난과 억울함 분노 등이 오히려 나에게 고양 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형사 재판장에는 가해자로든 피해자로든 절대 오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법원은 소액재판을 하는 곳이었다. 소액재판장은 법원 입구로부터 상당히 안쪽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소액재판은 다른 법정과 다르게 한층 속도감 있게 재판이 진행된다. 소액재판장의 재미있는 풍경은 재판의 당사자들이 계속 번갈아 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화재 재판 대리인과 제일화재 재판 대리인이 한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로 만났다가 다음사건에서는 뒤바뀌어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 상주하는 각 보험회사 직원들이었다. 소액재판의 진행은 어떻게 보면 그냥 흥정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어떤 자동차 피해보상 사건에서 판사는 서류상으로 6:4 비율로 책임 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6:4 어때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원고가 6:4로 이미 책임을 졌는데 다시 8:2으로 다시 바꾸고 싶다고 한 소송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판사가 그럼 7:3으로 합시다. 괜찮죠? 라고 말하면서 동의를 구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다.
아~ 소액사건은 이런 것이구나! 다른 사건도 비슷하게 진행 되고 있었다. 소액사건에서는 무조건 우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책임을 1이라도 줄이는 것이었다. 소액사건이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이래선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경우는 19 만 원짜리 소송이었는데 판사는 왜 보험처리 안하고 소송하는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참 황당한 일이었다. 판사가 왜 감정적으로 당사자들을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봉사활동은 사회에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번 학기 법률 소비자연맹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좀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발전에 일조를 하고 싶다. 정말 나에게는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된 것 같다. OT때 배운 ‘잊지맙시다’의 가사처럼 앞으로도 법률 투지 교육 단결 역사 민중이란 단어를 항상 가슴속에 새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