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법률소비자연맹 체험 보고기 - 건국대 법학과 이영선
겨울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봄날에 참여했던 오리엔테이션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처음 ‘사회봉사1’이라는 과목을 신청하고 봉사기관을 배정받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얼른 하고 싶은 기관을 선택하려고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서 기다렸던 시간들. 그 때 ‘법정모니터링’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지 제가 법학과라는 점에서 전공 상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 이었습니다. 그렇게 법률소비자연맹과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얼마 뒤 드디어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법률소비자연맹의 봄 학기 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들었던 생각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 같다’였습니다. 평일에 수업시간과 내 시간을 조절해가며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일이었고 집과 학교, 대법원 모두 거리가 있어 오며가며 시간을 쓰는 것도 많아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이대로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냥 포기할까 많은 생각을 했지만, 기왕에 내가 벌여놓은 일이고 2학년으로서 장래에 대해 가지는 고민에도 많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오리엔테이션 후 처음 법정모니터링을 위해 가본 대법원은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선 큰 법원에 들어와서 어디로 가야할지 우왕좌왕하며 검열대 앞에서 주춤거리며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법원직원들의 무뚝뚝한 표정에 잔뜩 쫄아서 눈치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법정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 괜히 내가 죄를 짓고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고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첫 날에는 어느 쪽이 변호사 쪽인지 검사 쪽인지 피고인 심리가 이루어지는 내내 이쪽저쪽 두리번거리기 바빠서 어떤 사건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왔었습니다. 또 마침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실 이전이 함께 이루어진 시점이라 사무실도 정리에 바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많은 학생들이 드나들어 굉장히 복잡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률소비자연맹 직원 분들이 일일이 하나하나 질문에 웃으며 친절히 대답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봉사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간은 얼마든지 편하게 조정하고 언제든지 사무실에 들러도 상관없다며 재택봉사도 있으니 한 학기동안 포기는 하지 말고 하는데 까지 해보라는 말씀을 많이들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힘이 많이 되어 꾸준히 매주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의 사례를 예로 들며 해주셨던 사회봉사의 중요함도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생들이 졸업까지 하는 봉사시간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이제껏 대학생으로서 나에게 투자하기 바빴던 시간들, 학점을 잘 관리하는 것만이 사회에 나가 좋은 직장을 얻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왔던 생각들 이 모든 것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사회봉사1’이라는 과목을 선택했던 것도 순수하게 봉사를 목적으로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학점이라는 요소가 끌렸고, 그 뒤에 봉사라는 뜻 깊은 일도 하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봉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전공으로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동안 학교에서 들어왔던 수 십 학점의 과목들 보다 이 1 학점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3월말부터 6월1일까지 저는 매주 법정에 들어서며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고 많은 사건들을 마주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에 눈물지으며 상대편에 소리 지르고 붙잡으며 하소연하는 아주머니, 노환에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홀어머니가 피고인자격으로 법정에 선 아들을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순간, 서로 믿고 동업하던 분들이 욕설과 폭언으로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법정에서 일어났던 다툼, 유명인의 명예훼손 소송 등. 법원에서는 하루에도 수 백 건, 수 천 건씩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 자리의 정 중앙에 서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건을 바라봐야하는 판사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억울함의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얼음 같은 냉정함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아야하는 검사의 입장에 나를 세워보며 나라면 이 순간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법학이라는 학문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법에 무지합니다. 처음 경험하는 소송에 휘말려 알지도 못하는 죄책이 오고가고 무서워 자기의 변론도 제대로 못하는 피고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며 온갖 정의는 내가 다 세울 수 있을 것처럼 멋지게 법관으로서 옷을 입고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만 상상해왔던 것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봉사라는 명목으로 모니터링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섰지만 문을 열고 다시 나올 때 진짜 내가 얻고 나오는 것은 체크된 모니터링 용지가 아니라 내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 억대의 고소 사건까지 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단지 교과서에서 배워오던 판례, 부과되는 죄책들은 죽어있는 지식임을 깨달았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한 문제 한 문제가 중요한 줄만 알았지, 교과서를 펼치지 않고도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처음의 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마지막 봉사를 하던 날, 법률소비자연맹에 방문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꽃을 팔고 계신 아저씨가 보였습니다. 마지막 날이고 그 동안 고마웠다고 표시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사들고 갔던 꽃을 받으시며 오히려 제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해주시던 법률연맹 분들께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법률연맹 총재님께서는 기쁜 마음이 우러나와 열심히 봉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꽃도 들고 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이라며 좋은 경험 앞으로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하라며 조언도 해주시는데 제가 과연 좋은 봉사자로 활동한 것인지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저는 도움을 오히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해오던 제 대학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봉사라는 새로운 제가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으니까요.
비록 학점을 이유로 시작하게 된 봉사지만 첫 걸음을 디딘 이상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서 하는 듯이 포장되어 비쳐지지만 그 속은 나를 위함이 꽉 들어차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어울려 노는 일만 즐겁고, 나른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오고 갈 뿐이기만 하던 제게 처음으로 보람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에 와서 가장 뜻 깊게 한 일은 무엇이었냐면 사회봉사라는 과목을 통해 봉사를 하였고 거기서 얻어낸 봉사의 기쁨을 알아낸 것이라고.
이번학기 내내 매주 금요일이 행복했습니다. 법원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저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생각했고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활동이었지만 많은 지도해주시고 칭찬도 아끼지 않아 주셨던 ‘법률소비자연맹’-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