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법률소비자연맹 사회봉사를 마치며,,,동덕여대 일본어과 조나래
법률연맹
2009-03-17 00:00:00
487
2007년 9월 8일 학교에서 한 첫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9월 15일 두 번째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나는 사회봉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비디오 속의 까치라는 친구는 웃기면서도 슬픈 아이였다. 1년전에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가서 그 비디오를 보고 이번 학기에 또 보게 된 것이다. 1년 전에는 그저 웃기기만 했다. 너무 옛날에 만든 것 같아 더빙하는 것도 웃기고 어색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또 보게 된 비디오 속의 까지라는 친구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능이 보통사람들 보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은 것뿐이라고... 까치가 하나하나를 해내는 것을 보고 내가 어찌나 다 기쁜던지...나는 그것을 알아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또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가르침과 배움을 얻어가는 것이 사회봉사활동이라고... 그동안 나는 봉사는 조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작년에 졸업을 위해 하고 통과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한 번 봉사활동으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보육원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갔을 때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 처음 만나는 봉사하러 온 여러 사람들, 그 때의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나에게는 잘 오지 않자, ‘나는 이내 내가 여기를 왜 온 걸까?’하고 온 지 30분도 안되서 온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나를 보고 사람들이 여기 아이들은 먼저 다가가서 놀아주고 이야기하면 이내 잘 따른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용기를 갖고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니 아이들도 나를 이내 따랐다. 그러나 초등학생 되는 아이들은 봉사하러 온 우리를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려 하자 ‘왜 왔어?’하며 자기네들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때 난 너무 어이없어서 또 한 번 내가 여기 왜 왔을까하며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과 2~3시간 이렇게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며 그 아이들도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나에 대해 궁금해 하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매주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한 번 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 처음 본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을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 각자 해야할 일이 있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난 그때 너무 난감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그 아이 나에게서 떨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돌아서서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봉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예쁜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마음이라면 나는 이번에는 사회봉사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사회봉사하고 싶었던 법률연맹의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위해 9월 20일 목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철을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법률연맹으로 향했다. 난 수업이 늦게 끝나 30분정도 늦게 갔는데 이미 많이 학생들이 와서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없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앉을 자기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더 늦게 온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앉았다. 법률연맹에서도 10여년동안 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을 해왔지만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온 것은 처음이라며 바닥에 앉은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가 너무 불편했지만 모든 학생들은 강의에 열중했다.
김대인 총재님은 우선 법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법에 대한 지식 문제를 내고 학생이 맞추면 선물도 주고 유익하게 강의를 진행하셨다. 역시 법을 전공한 학생들이 답을 많이 맞추었다.
또 중간중간 윤부장을 따라 ‘잊지 맙시다’와 ‘정말 주권자인가’라는 법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들을 김대인 총재님이 직접 작사하시며 법에 대해 투명성, 공정성을 강조하셨다. 처음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가사를 되새겨보니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의 정신들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의를 다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9월 28일 세 번 오리엔테이션 중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또 법률연맹으로 향했다. 두 번째 오리엔테이션과 마찬가지로 주제는 ‘법과 사법을 알아야 나와 사회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강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법은 국가 공동체 사회구성원간의 타협의 산물로 구속력 있는 규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적 질서에 뿌리를 두고 그 시대, 사회를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경제력을 띤 약속으로 사회통합과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사법은 개인과 집단의 생명, 재산, 자유, 명예, 권리의 문제 등을 국가의 이름으로 판단, 정의실현을 위하여 법을 다루는 과정이다. 법의 정의구현은 법을 구현하고 집행하는 사람 역시 감정이 있고 이익에 흔들리는 사람이라 국가의 희망사항이나 유사이래 법이 완벽히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사회봉사를 위해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였다. 나는 국정감사를 신청하였다. 국정감사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알고 싶어졌다.
2007년 10월 17일 올해의 첫 국정감사는 시작되었다. 사실 그 전에는 뉴스에서 국정감사에 관한 것이 나오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봐서 뭐해?’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국정감사를 가기전에 하나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 뉴스도 챙겨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며 열심히 준비하였다.
국정감사 첫날, 정무위원회는 한나라당, 대통합민주신당, 또 피감기관은 곧 다가올 대선으로 인해 민감한 부분의 의견 마찰로 몸싸움까지 벌어져 결국 파행되었다. 이렇게 국정감사의 시작은 별로 좋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서 내가 배정받은 곳도 저렇게 싸움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다.
내가 처음 배정받은 곳은 재정경제위원회였다. 가기전에 국정감사 모니터요원으로서의 유의사항, 국회의원에 관한 자료들을 읽어보며 가져야 할 것들을 챙겼다.
10월 19일 재경경제위원회가 국정감사는 피감기관인 한국은행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비가 오며 바람이 많이 불어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9시 10분 한국은행에 도착했다. 국정감사가 열리는 15층으로 가서 NGO단체에서 왔다고 하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개회가 시작되는 전 국회의원의 자료들과 한국은행의 자료들을 챙기며 모니터요원으로서 준비하며 개회시간을 준비하였다.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와 개회 시작전까지 너무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개회시작 시간이 다 되어가자 국회의원들이 착석하기 시작했고 한국은행의 총재와 부총재도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0시 7분 국정감사는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NGO모니터단의 인사가 있고, 그 다음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가 이어지고 지난 1년간의 한국은행의 보고가 있었다. 그러고 난 뒤 국회의원들이 준비해온 질문을 하며 감사는 시작되었다. 단연 한국은행 국정감사의 이슈는 적자 문제였다. 5년간 지속되어온 한국은행의 적자문제는 국회의원들로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다. 또 이날 이슈가 되었던 한국은행이 개선해야할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10시에 시작된 국정감사는 1시간 30분의 식사시간이 있은 뒤 계속되었다. 의원들은 점심식사후에는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지 않았다. 맨처음 질문을 한 의원은 자신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나가서는 국정감사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또 다른 의원은 자리를 많이 비워서 의원들이 질문했던 것을 또 하고 또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 의원들이 자신을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그리고 피감기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정확하고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보다는 회피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해 많은 의원들의 흥분케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의원들의 협박성 발언은 내가 듣기에도 너무 거북했다. 그러면서 서로들간의 언성도 조금씩 높아져갔으나, 위원장의 중재로 국정감사는 계속 되었다.
이렇게 해서 10시에 시작된 국정감사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의원들과 한국은행의 총재, 부총재님은 서로 다들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인사를 나누고서 각자 흩어졌다. 장장 10시간동안 모니터요원으로서 발언내용을 다 받아적고 하느라 그때는 정말 힘이 다 빠져버렸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고,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경제와 앞으로의 경제정책방향, 경제 성장률에 대한 공부하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마치고 돌아가면서 내가 무겁게 많은 보도자료를 들고가자 좀 더 편하게 들고가라며 보자기에 책도 싸주고,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는 한국은행 직원들의 따뜻한 배려를 느끼면서 그날의 국정감사를 끝내고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월 2일 나는 국정감사 모니터를 하기 위해 국회로 향했다. 여의도역에서 내려 국회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한 20분여간 기다린 끝에 국회버스를 타고 국회 들어갔다. 입구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생을 하며 드디어 본청1층에서 방문증을 받아 NGO단체가 모니터할 수 있는 국회 250호실로 갔다. 나는 정무위원회의 모니터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정무위원회의 2007년 마지막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이었다. 역시 정무위원회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 BBK사건이 가장 이슈화되었다. 한나라당은 BBK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였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보이며 서로간의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서로 언성도 많이 높아지고, 헐뜯기도 일쑤였다.
이번 국정감사의 중간평가에서도 사상최악의 국정감사라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평가가 있었다. 그것은 대선과 관련된 되어 각 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다른 당의 후보들을 헐뜯으면서 서로 유리한 의견만 내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내내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10시에 시작된 정무위원회는 국정감사는 7시 40분에 끝이 났다. 10시간여동안 2007년 마지막 정무위의 국정감사는 다행히 무사히 마치며 그렇게 종료되었다.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는 이번 대선과 관련이 많은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서로간의 충돌도 많이 생겨, 나도 모니터를 하는 내내 살얼음을 걷는듯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마지막 국정감사가 무사히 끝나자 안도감이 들었다.
국정감사를 할 때 받아적은 것들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빨리 게시판에 정리해서 올려야 했기 때문에 쉴 여유가 없었다. 정리하면서 하나하나를 정리하면서 이번 국정감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11월 9일 나는 법정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법원이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순간 너무 어리둥절했다. 난 먼저 형사재판을 모니터 하기위해 형사재판장으로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법의 판결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여러 가지의 사건들이 많았다. 사기, 횡령, 폭행치사 등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법의 판결을 기다렸다. 재판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그동안 내가 TV에서만 보던 재판장이 어런 것이었구나...’하고 궁금증이 풀리는 동시에 냉정하고 살벌한 장소임을 느꼈다. 피고인들이 한명씩 한명씩 들어오면 판사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보통 판결을 한번에 나지 않았고 여러번의 걸쳐 재판을 해 판결을 신중하게 내리려 하였다. 모니터한 것을 가지고 법률연맹으로 가서 보고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법률소비장연맹 사무실이 이전해서 이사를 돕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법률연맹으로 갔다. 전날 비가 와서 날씨가 추워져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했다.그래서 이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이사하는 거리는 가까웠지만 짐들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책들을 나르고 자료들을 정리하며 이사를 도왔다. 이사를 마치기까지 끝까지 있지는 못했지만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어 기쁜 날이었다.
9월 8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약 3개월에 걸쳐 한 나의 사회봉사는 이렇게 끝났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르는 점도 많아 힘들었었다. 그러나 힘들었던 것만큼 그만큼의 보람도 더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국정감사 모니터를 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정치, 경제에 대해서는 어려워서 잘 알려 하지 않았는데 이번 국정감사 모니터를 하면서 뉴스와 KBS1에서 한 다큐 국회의 72시간을 챙겨보며 우리나라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이득만 생각하며 헐뜯는 의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실망도 많이 했다. 분명 한국의 국회는 고쳐야 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지금 최대 관심사인 BBK사건이 빨리 밝혀져서 해결되고, 한국의 경제가 나아지기 위해 좀 더 한국은행은 노력하였으면 한다. 이들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힘써야하는 부분임을 알지만 그 시작을 그들이 먼저 하기를 바란다.
이번 법률소비자연맹에서의 사회봉사는 그동안 내가 잘 알지 못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었던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또 다시 기회가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다른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비디오 속의 까치라는 친구는 웃기면서도 슬픈 아이였다. 1년전에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가서 그 비디오를 보고 이번 학기에 또 보게 된 것이다. 1년 전에는 그저 웃기기만 했다. 너무 옛날에 만든 것 같아 더빙하는 것도 웃기고 어색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또 보게 된 비디오 속의 까지라는 친구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능이 보통사람들 보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은 것뿐이라고... 까치가 하나하나를 해내는 것을 보고 내가 어찌나 다 기쁜던지...나는 그것을 알아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또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가르침과 배움을 얻어가는 것이 사회봉사활동이라고... 그동안 나는 봉사는 조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작년에 졸업을 위해 하고 통과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한 번 봉사활동으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보육원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갔을 때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 처음 만나는 봉사하러 온 여러 사람들, 그 때의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나에게는 잘 오지 않자, ‘나는 이내 내가 여기를 왜 온 걸까?’하고 온 지 30분도 안되서 온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나를 보고 사람들이 여기 아이들은 먼저 다가가서 놀아주고 이야기하면 이내 잘 따른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용기를 갖고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니 아이들도 나를 이내 따랐다. 그러나 초등학생 되는 아이들은 봉사하러 온 우리를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려 하자 ‘왜 왔어?’하며 자기네들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때 난 너무 어이없어서 또 한 번 내가 여기 왜 왔을까하며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과 2~3시간 이렇게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며 그 아이들도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나에 대해 궁금해 하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매주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한 번 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 처음 본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을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 각자 해야할 일이 있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난 그때 너무 난감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그 아이 나에게서 떨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돌아서서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봉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예쁜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마음이라면 나는 이번에는 사회봉사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사회봉사하고 싶었던 법률연맹의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위해 9월 20일 목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철을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법률연맹으로 향했다. 난 수업이 늦게 끝나 30분정도 늦게 갔는데 이미 많이 학생들이 와서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없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앉을 자기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더 늦게 온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앉았다. 법률연맹에서도 10여년동안 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을 해왔지만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온 것은 처음이라며 바닥에 앉은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가 너무 불편했지만 모든 학생들은 강의에 열중했다.
김대인 총재님은 우선 법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법에 대한 지식 문제를 내고 학생이 맞추면 선물도 주고 유익하게 강의를 진행하셨다. 역시 법을 전공한 학생들이 답을 많이 맞추었다.
또 중간중간 윤부장을 따라 ‘잊지 맙시다’와 ‘정말 주권자인가’라는 법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들을 김대인 총재님이 직접 작사하시며 법에 대해 투명성, 공정성을 강조하셨다. 처음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가사를 되새겨보니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의 정신들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의를 다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9월 28일 세 번 오리엔테이션 중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또 법률연맹으로 향했다. 두 번째 오리엔테이션과 마찬가지로 주제는 ‘법과 사법을 알아야 나와 사회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강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법은 국가 공동체 사회구성원간의 타협의 산물로 구속력 있는 규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적 질서에 뿌리를 두고 그 시대, 사회를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경제력을 띤 약속으로 사회통합과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사법은 개인과 집단의 생명, 재산, 자유, 명예, 권리의 문제 등을 국가의 이름으로 판단, 정의실현을 위하여 법을 다루는 과정이다. 법의 정의구현은 법을 구현하고 집행하는 사람 역시 감정이 있고 이익에 흔들리는 사람이라 국가의 희망사항이나 유사이래 법이 완벽히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사회봉사를 위해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였다. 나는 국정감사를 신청하였다. 국정감사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알고 싶어졌다.
2007년 10월 17일 올해의 첫 국정감사는 시작되었다. 사실 그 전에는 뉴스에서 국정감사에 관한 것이 나오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봐서 뭐해?’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국정감사를 가기전에 하나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 뉴스도 챙겨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며 열심히 준비하였다.
국정감사 첫날, 정무위원회는 한나라당, 대통합민주신당, 또 피감기관은 곧 다가올 대선으로 인해 민감한 부분의 의견 마찰로 몸싸움까지 벌어져 결국 파행되었다. 이렇게 국정감사의 시작은 별로 좋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서 내가 배정받은 곳도 저렇게 싸움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다.
내가 처음 배정받은 곳은 재정경제위원회였다. 가기전에 국정감사 모니터요원으로서의 유의사항, 국회의원에 관한 자료들을 읽어보며 가져야 할 것들을 챙겼다.
10월 19일 재경경제위원회가 국정감사는 피감기관인 한국은행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비가 오며 바람이 많이 불어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9시 10분 한국은행에 도착했다. 국정감사가 열리는 15층으로 가서 NGO단체에서 왔다고 하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개회가 시작되는 전 국회의원의 자료들과 한국은행의 자료들을 챙기며 모니터요원으로서 준비하며 개회시간을 준비하였다.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와 개회 시작전까지 너무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개회시작 시간이 다 되어가자 국회의원들이 착석하기 시작했고 한국은행의 총재와 부총재도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0시 7분 국정감사는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NGO모니터단의 인사가 있고, 그 다음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가 이어지고 지난 1년간의 한국은행의 보고가 있었다. 그러고 난 뒤 국회의원들이 준비해온 질문을 하며 감사는 시작되었다. 단연 한국은행 국정감사의 이슈는 적자 문제였다. 5년간 지속되어온 한국은행의 적자문제는 국회의원들로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다. 또 이날 이슈가 되었던 한국은행이 개선해야할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10시에 시작된 국정감사는 1시간 30분의 식사시간이 있은 뒤 계속되었다. 의원들은 점심식사후에는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지 않았다. 맨처음 질문을 한 의원은 자신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나가서는 국정감사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또 다른 의원은 자리를 많이 비워서 의원들이 질문했던 것을 또 하고 또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 의원들이 자신을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그리고 피감기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정확하고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보다는 회피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해 많은 의원들의 흥분케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의원들의 협박성 발언은 내가 듣기에도 너무 거북했다. 그러면서 서로들간의 언성도 조금씩 높아져갔으나, 위원장의 중재로 국정감사는 계속 되었다.
이렇게 해서 10시에 시작된 국정감사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의원들과 한국은행의 총재, 부총재님은 서로 다들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인사를 나누고서 각자 흩어졌다. 장장 10시간동안 모니터요원으로서 발언내용을 다 받아적고 하느라 그때는 정말 힘이 다 빠져버렸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고,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경제와 앞으로의 경제정책방향, 경제 성장률에 대한 공부하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마치고 돌아가면서 내가 무겁게 많은 보도자료를 들고가자 좀 더 편하게 들고가라며 보자기에 책도 싸주고,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는 한국은행 직원들의 따뜻한 배려를 느끼면서 그날의 국정감사를 끝내고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월 2일 나는 국정감사 모니터를 하기 위해 국회로 향했다. 여의도역에서 내려 국회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한 20분여간 기다린 끝에 국회버스를 타고 국회 들어갔다. 입구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생을 하며 드디어 본청1층에서 방문증을 받아 NGO단체가 모니터할 수 있는 국회 250호실로 갔다. 나는 정무위원회의 모니터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정무위원회의 2007년 마지막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이었다. 역시 정무위원회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 BBK사건이 가장 이슈화되었다. 한나라당은 BBK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였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보이며 서로간의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서로 언성도 많이 높아지고, 헐뜯기도 일쑤였다.
이번 국정감사의 중간평가에서도 사상최악의 국정감사라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평가가 있었다. 그것은 대선과 관련된 되어 각 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다른 당의 후보들을 헐뜯으면서 서로 유리한 의견만 내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내내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10시에 시작된 정무위원회는 국정감사는 7시 40분에 끝이 났다. 10시간여동안 2007년 마지막 정무위의 국정감사는 다행히 무사히 마치며 그렇게 종료되었다.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는 이번 대선과 관련이 많은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서로간의 충돌도 많이 생겨, 나도 모니터를 하는 내내 살얼음을 걷는듯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마지막 국정감사가 무사히 끝나자 안도감이 들었다.
국정감사를 할 때 받아적은 것들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빨리 게시판에 정리해서 올려야 했기 때문에 쉴 여유가 없었다. 정리하면서 하나하나를 정리하면서 이번 국정감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11월 9일 나는 법정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법원이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순간 너무 어리둥절했다. 난 먼저 형사재판을 모니터 하기위해 형사재판장으로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법의 판결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여러 가지의 사건들이 많았다. 사기, 횡령, 폭행치사 등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법의 판결을 기다렸다. 재판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그동안 내가 TV에서만 보던 재판장이 어런 것이었구나...’하고 궁금증이 풀리는 동시에 냉정하고 살벌한 장소임을 느꼈다. 피고인들이 한명씩 한명씩 들어오면 판사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보통 판결을 한번에 나지 않았고 여러번의 걸쳐 재판을 해 판결을 신중하게 내리려 하였다. 모니터한 것을 가지고 법률연맹으로 가서 보고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법률소비장연맹 사무실이 이전해서 이사를 돕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법률연맹으로 갔다. 전날 비가 와서 날씨가 추워져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했다.그래서 이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이사하는 거리는 가까웠지만 짐들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책들을 나르고 자료들을 정리하며 이사를 도왔다. 이사를 마치기까지 끝까지 있지는 못했지만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어 기쁜 날이었다.
9월 8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약 3개월에 걸쳐 한 나의 사회봉사는 이렇게 끝났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르는 점도 많아 힘들었었다. 그러나 힘들었던 것만큼 그만큼의 보람도 더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국정감사 모니터를 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정치, 경제에 대해서는 어려워서 잘 알려 하지 않았는데 이번 국정감사 모니터를 하면서 뉴스와 KBS1에서 한 다큐 국회의 72시간을 챙겨보며 우리나라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이득만 생각하며 헐뜯는 의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실망도 많이 했다. 분명 한국의 국회는 고쳐야 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지금 최대 관심사인 BBK사건이 빨리 밝혀져서 해결되고, 한국의 경제가 나아지기 위해 좀 더 한국은행은 노력하였으면 한다. 이들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힘써야하는 부분임을 알지만 그 시작을 그들이 먼저 하기를 바란다.
이번 법률소비자연맹에서의 사회봉사는 그동안 내가 잘 알지 못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었던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또 다시 기회가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다른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