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참여한만큼 느끼고얻게된다..-한국외대 경영학과 박재모
법률연맹
2009-03-17 00:00:00
568
이번 학기 수강 신청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여유 있게 수강하면서 대학생 때 해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학년이라 그런지 시간적인 여유도 없으면서 있었고,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적인 여유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사회봉사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단체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봉사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학점이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신청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학교 친구의 소개로 ‘법률 소비자 연맹’이라는 한 시민 단체를 알게 되었다.
‘법률 소비자 연맹’(이하 법률연맹)은 법정모니터링을 비롯하여 언론모니터링·의정모니터링 등 사회 곳곳의 법과 사법이 필요한 곳을 모니터하면서 시민단체로서 그러한 기능들이 바르게 되어져 가는지 감시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일찍 시작하고자 했던 나는 메일과 전화를 통해 연맹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김 대인 총재님에게 무려 3시간이나 사전교육을 받게 되었다.
발단은 한 학생의 여름방학 봉사 과제였던 ‘신자유주의’였는데 그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영학 전공이었던 나에게는 1학년 때부터 익히 들어오지만 그것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사조였고 현실의 이념이었다.
번번히 PD(People Democracy) 계열의 법대 운동권이었던 작은 형과 마음에 상처 내는 토론을 벌였던 그런 주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총재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고, 시민단체 활동을 이끌고 계시는 총재님의 시민 운동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세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봉사라는 것이 내 삶의 의무가 아닌 조금 더 값진 무언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크리스천 지성인으로 살아가면서 해야 될 내 삶의 의무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만들고 원래의 자리에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시간 이후, 나는 ‘법률 연맹’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바쁜 학기였지만 법률 연맹의 활동에 빠지지 않게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하게 된 활동은 법정 모니터링이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 법정을 찾았을 때, 많이 낯설었다. 나는 한 번도 법정에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형사 재판 세 건을 참관했는데, 첫 번째 재판은 사기 사건이었다.
한 여자가 피고인이었는데, 다른 재판도 함께 진행 중이어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 모두 약간은 난감해하는 듯 했다.
피고인과 검사, 그리고 변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피고인의 상황이 참 안타까웠다.
도와줄 가족도 없고, 혼자 자영업을 하면서 벌어졌던 사건들, 법정에 피고인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저 옷을 벗고 법정 밖에 있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옆집 아줌마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법정 안에서는 판사와 검사의 심문을 받는 피고인이었다.
그리고 그 재판정에서 놀란 또 하나의 것은 판사가 여자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젊었다.
다른 법정에서는 강간폭행 사건이 진행 중이었다.
이번에는 판사가 세 명이었고, 검사가 나보다 많아봤자 2~3살 많아 보이는 여검사였다.
신문지상에서만 들어오던 법조계의 여성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검사의 구형과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사건의 내용은 듣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 검사는 구형 선고문을 읽어내려 가면서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때로 서류를 들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검사가 이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 피고인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검사의 목소리와 내용은 그 범죄가 얼마나 파렴치한 범죄였으며 검사라는 직분을 떠나서 같은 여자로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 구형선언문의 그런 말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 바로 잡고, 우리 주변의 어머니와 수많은 딸들이 자유롭게 지내기 위해...’ 라는 구절이 있었다.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그 법정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이 지긋한 노년의 변호사였다.
그 변호인은 피고인의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는 도망치고,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행,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끔찍한 상황과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피고인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피고인, 기본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 했고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별로 없는 피고인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와 다른 이들을 용서했던 것처럼 불쌍히 여겨 선처를 부탁하며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한 피고인과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바라보는 검사와 변호인의 상반된 결론,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보이던 피고인, 양측 이야기를 듣던 세 판사의 표정 변화는 나에게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과연 누가 먼저 잘못한 건가? 이 사회인가 아니면 저 피고인인가? 피해자는 무슨 잘못인가? 어떤 결론이 판사들의 바른 결정인가?
그것은 법으로만 옳은 것인가? 법은 도덕적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이런 생각들은 이전에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생각해볼 기회도 없던 것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은 아무런 법지식이 없는 내가 조금이나마 법에 대해, 사회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에 내가 참여한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감사 현장 모니터링이었다.
국정감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통일외교통상위원회나 재정경제위, 또는 문화관광위원회에 참관하고 싶었다.
그러던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은 10월 23일 문화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였는데,
그 날 수업이 있었지만, 국정 감사 현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앞섰다.
문화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에 참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면서 국회의원들의 면모를 보았다.
익히 들어본 국회의원도 있었고 처음 보는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검색하면서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어떠한 것이 보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23일 아침 나름대로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왔지만,
집이 워낙 먼지라 조금 막히기 시작하자 기어이 늦고 말았다.
시작부터 보고 싶었던 내 바람은 무너졌지만 이후 조금 더 주의 깊게 지켜보기로 했다.
몇 번의 절차를 거치고 나서 감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감사장에는 위원장을 가운데 두고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을 달리하여 앉아 있었다.
위원장의 반대쪽에는 피감기관 관련자들이 앉아 있었다.
기자들도 왔다 갔다 하며 이야깃거리를 적어가고 촬영해 갔다.
이후 지켜본 국정 감사는 내가 생각했던 엄숙하고 조용하며 치열한 논리전 같은 국정 감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질의시간 위주로 자리를 지켰다.
왜 국정감사 모니터 용지에 이석현황이 들어가 있는지 1시간이 지나자 잘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야당인 한나라당은 조금 더 신랄하게 피감기관을 몰아 세웠다.
한나라당의 인재풀이 우수하다는 것도 그들이 조사한 내용과 발표되어지는 형식들,
예를 들면, 작성된 파워포인트라던가 나눠지는 보도 자료에서 알 수 있었다.
그 날의 국정 감사는 피감기관이 대한 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체육계여서 이야기 되어질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예산의 비효율적 집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가 이어졌고, 체육계에 태만한 악습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요구 등이 감사 시간 내내 이어졌다.
오후가 되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원은 소수였고, 그나마 그 중의 절반은 자신의 질의 시간이 되자 들어오고 끝나자 나갔다.
누구를 위한 국회의원인지 잘 모르게 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았다.
또 하나 느낀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장관급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피감기관의 장이나 관련자들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도 사람이 계획한 것이며, 실행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감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과 사법이 지켜지고, 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이 시대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법률 연맹의 봉사 활동을 마치게 되면서 귀한 상을 받았다.
국정 감사 우수 모니터위원으로 추천받아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별로 한 것이 없었는데, 귀한 상을 받아서 여러 법률 연맹 분들에게 참 감사했다.
이번 학기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법률 소비자 연맹에서 했던 여러 모니터링의 경험들은 나에게 사회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의정활동에 대해서, 또 나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통해서 매번 느꼈던 것, 모든 것은 내가 참여한 만큼 느끼고 얻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4학년이라 그런지 시간적인 여유도 없으면서 있었고,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적인 여유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사회봉사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단체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봉사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학점이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신청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학교 친구의 소개로 ‘법률 소비자 연맹’이라는 한 시민 단체를 알게 되었다.
‘법률 소비자 연맹’(이하 법률연맹)은 법정모니터링을 비롯하여 언론모니터링·의정모니터링 등 사회 곳곳의 법과 사법이 필요한 곳을 모니터하면서 시민단체로서 그러한 기능들이 바르게 되어져 가는지 감시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일찍 시작하고자 했던 나는 메일과 전화를 통해 연맹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김 대인 총재님에게 무려 3시간이나 사전교육을 받게 되었다.
발단은 한 학생의 여름방학 봉사 과제였던 ‘신자유주의’였는데 그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영학 전공이었던 나에게는 1학년 때부터 익히 들어오지만 그것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사조였고 현실의 이념이었다.
번번히 PD(People Democracy) 계열의 법대 운동권이었던 작은 형과 마음에 상처 내는 토론을 벌였던 그런 주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총재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고, 시민단체 활동을 이끌고 계시는 총재님의 시민 운동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세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봉사라는 것이 내 삶의 의무가 아닌 조금 더 값진 무언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크리스천 지성인으로 살아가면서 해야 될 내 삶의 의무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만들고 원래의 자리에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시간 이후, 나는 ‘법률 연맹’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바쁜 학기였지만 법률 연맹의 활동에 빠지지 않게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하게 된 활동은 법정 모니터링이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 법정을 찾았을 때, 많이 낯설었다. 나는 한 번도 법정에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형사 재판 세 건을 참관했는데, 첫 번째 재판은 사기 사건이었다.
한 여자가 피고인이었는데, 다른 재판도 함께 진행 중이어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 모두 약간은 난감해하는 듯 했다.
피고인과 검사, 그리고 변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피고인의 상황이 참 안타까웠다.
도와줄 가족도 없고, 혼자 자영업을 하면서 벌어졌던 사건들, 법정에 피고인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저 옷을 벗고 법정 밖에 있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옆집 아줌마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법정 안에서는 판사와 검사의 심문을 받는 피고인이었다.
그리고 그 재판정에서 놀란 또 하나의 것은 판사가 여자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젊었다.
다른 법정에서는 강간폭행 사건이 진행 중이었다.
이번에는 판사가 세 명이었고, 검사가 나보다 많아봤자 2~3살 많아 보이는 여검사였다.
신문지상에서만 들어오던 법조계의 여성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검사의 구형과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사건의 내용은 듣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 검사는 구형 선고문을 읽어내려 가면서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때로 서류를 들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검사가 이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 피고인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검사의 목소리와 내용은 그 범죄가 얼마나 파렴치한 범죄였으며 검사라는 직분을 떠나서 같은 여자로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 구형선언문의 그런 말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 바로 잡고, 우리 주변의 어머니와 수많은 딸들이 자유롭게 지내기 위해...’ 라는 구절이 있었다.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그 법정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이 지긋한 노년의 변호사였다.
그 변호인은 피고인의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는 도망치고,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행,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끔찍한 상황과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피고인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피고인, 기본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 했고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별로 없는 피고인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와 다른 이들을 용서했던 것처럼 불쌍히 여겨 선처를 부탁하며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한 피고인과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바라보는 검사와 변호인의 상반된 결론,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보이던 피고인, 양측 이야기를 듣던 세 판사의 표정 변화는 나에게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과연 누가 먼저 잘못한 건가? 이 사회인가 아니면 저 피고인인가? 피해자는 무슨 잘못인가? 어떤 결론이 판사들의 바른 결정인가?
그것은 법으로만 옳은 것인가? 법은 도덕적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이런 생각들은 이전에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생각해볼 기회도 없던 것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은 아무런 법지식이 없는 내가 조금이나마 법에 대해, 사회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에 내가 참여한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감사 현장 모니터링이었다.
국정감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통일외교통상위원회나 재정경제위, 또는 문화관광위원회에 참관하고 싶었다.
그러던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은 10월 23일 문화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였는데,
그 날 수업이 있었지만, 국정 감사 현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앞섰다.
문화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에 참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면서 국회의원들의 면모를 보았다.
익히 들어본 국회의원도 있었고 처음 보는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검색하면서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어떠한 것이 보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23일 아침 나름대로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왔지만,
집이 워낙 먼지라 조금 막히기 시작하자 기어이 늦고 말았다.
시작부터 보고 싶었던 내 바람은 무너졌지만 이후 조금 더 주의 깊게 지켜보기로 했다.
몇 번의 절차를 거치고 나서 감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감사장에는 위원장을 가운데 두고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을 달리하여 앉아 있었다.
위원장의 반대쪽에는 피감기관 관련자들이 앉아 있었다.
기자들도 왔다 갔다 하며 이야깃거리를 적어가고 촬영해 갔다.
이후 지켜본 국정 감사는 내가 생각했던 엄숙하고 조용하며 치열한 논리전 같은 국정 감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질의시간 위주로 자리를 지켰다.
왜 국정감사 모니터 용지에 이석현황이 들어가 있는지 1시간이 지나자 잘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야당인 한나라당은 조금 더 신랄하게 피감기관을 몰아 세웠다.
한나라당의 인재풀이 우수하다는 것도 그들이 조사한 내용과 발표되어지는 형식들,
예를 들면, 작성된 파워포인트라던가 나눠지는 보도 자료에서 알 수 있었다.
그 날의 국정 감사는 피감기관이 대한 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체육계여서 이야기 되어질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예산의 비효율적 집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가 이어졌고, 체육계에 태만한 악습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요구 등이 감사 시간 내내 이어졌다.
오후가 되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원은 소수였고, 그나마 그 중의 절반은 자신의 질의 시간이 되자 들어오고 끝나자 나갔다.
누구를 위한 국회의원인지 잘 모르게 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았다.
또 하나 느낀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장관급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피감기관의 장이나 관련자들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도 사람이 계획한 것이며, 실행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감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과 사법이 지켜지고, 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이 시대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법률 연맹의 봉사 활동을 마치게 되면서 귀한 상을 받았다.
국정 감사 우수 모니터위원으로 추천받아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별로 한 것이 없었는데, 귀한 상을 받아서 여러 법률 연맹 분들에게 참 감사했다.
이번 학기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법률 소비자 연맹에서 했던 여러 모니터링의 경험들은 나에게 사회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의정활동에 대해서, 또 나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통해서 매번 느꼈던 것, 모든 것은 내가 참여한 만큼 느끼고 얻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