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강의실 밖에서 직접 현실에 부딪히는 경험.. - 서울대 경제학부 이은영
이번 학기가 시작하기 전 수강신청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여러 가지 고민에 빠졌다.
벌써 3학년이 된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는데, 이에 더해 지난 2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이루었나.’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뭐라고 답하는 것조차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마냥 웃고 즐기며 대학을 다닐게 아니라 정말 유익하고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한 선배로부터 사회봉사 강좌를 신청해보라는 조언을 들었고 차근차근 인터넷을 뒤적이며 내가 어떠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이때 가장 눈에 띄던 활동이 바로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법률 지원 시민단체에서 행하는 대학생 법정모니터링 활동이었다.
목록에 있던 다른 단체들과는 하는 일에 있어서 확실히 차별이 되었다.
처음에는, 과연 법정에서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봉사활동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2학년 때 수업 과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방청했을 시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평소에 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나는 주저 않고 법률소비자연맹의 활동을 신청했다.

나의 활동은 3월에 방배동에 위치한 연맹 본부에서 있었던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법률소비자연맹에서 한 학기 동안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나 같은 대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다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한편, 법률소비자연맹에서 할 수 있는 사회봉사활동은 법정모니터링 외에도 언론모니터링, 학술세미나 모니터링, 국회의정모니터링, 번역활동, 법률노래 작곡 등 상당히 다양했는데, 본인이 무엇을 주로 하고 싶건 간에 법정모니터링 활동은 누구에게나 필수였다.
사법기관도 감시 대상임을 강조하는 이 단체의 이념에 비추어볼 때 사회봉사자로 하여금 법정모니터링을 필수로 정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나는 봉사활동 기간 동안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방문하여 형사재판 약 10건, 민사재판 5건 및 몇몇 소액재판을 모니터링 하였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형사 법정이었다.
사실, 대학생 신분으로 그 크기나 분위기만으로도 위엄 있는 법원건물에 들어서, 숙연하면서도 긴장감이 팽팽한 법정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건의 재판을 방청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작년에 형사재판을 방청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법정보다는 형사법정이 조금이나마 더 익숙할 것 같아 가장 먼저 형사법정을 찾은 것이었다.


내가 모니터링 한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판사들은 제각기 너무나도 달랐다.
피해자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진심으로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소망하고 있음을 내가 몸소 느낄 수 있었던 판사가 있었는가 하면,
원고와 피고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이에 역정을 내는 판사도 있었으며, 형식적으로 발언하고 판결을 내리는 듯한 판사도 있었다.
한편, 재판장 양 옆에 앉아 있는 젊은 배석판사들은 재판과정에는 전혀 관여를 안 했는데, 정면을 멍하게 응시하는 등 과연 재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검사들의 특징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사건에 대하여 정말 끈질기게 파헤치는 열정적인 검사도 있었고, 한 자리에 앉아서 판사가 묻는 질문에만 대답하는 검사도 있었다.


한편, 변호사는 기존에 내가 생각해오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기존에 매스미디어를 통해 상상할 수 있었던 당당한 변호사의 모습보다는, 담당 사건이 많아 지쳐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며, 주체적으로 사건에 대하여 조사하고 분석하기 보다는 단지 재판 당사자의 말을 좀 더 세련되게 정리함으로써 ‘변론인/변호인'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대변인’적인 성격이 짙다고 생각되었다. 이는 민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민사법정모니터링에서 보았던 재판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재판이 하나 있다.
원고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한 유명 편의점 프랜차이즈 기업이었고, 피고는 그 기업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가맹점을 운영하는 중년부부였다.
가맹계약은 일반적으로 5년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년부부는 적자 수익으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2년만 영업을 한 채로 위약금을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프랜차이즈 기업에서는 계약파기에 대하여 위약금 말고도 통상의 손해보상 이상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원고 측 증인으로 나온 이 기업의 법무팀장도, 법적인 소양이 많지 않은 나조차 고개를 갸우뚱 할만한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듯 했다.
이에 피고인 중 남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개입하는 부분은 극히 적었다.
다음 재판 날짜를 정하고 이날 재판은 끝이 났는데, 법정에서 나오는 길에 난 이 중년부부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는 법정에서의 남편의 자신 없는 발언과 무기력함을 질책하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막막함을 달랬다.
나는 이 광경이 우리 사회 한 단면의 ‘현실’인 것만 같았다.
모든 이가 평등하게 취급받는 법정에서조차 이 중년부부는 한 거대기업 앞에서 한 없이 움츠러들었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듯 하였다.
피고가 좀 더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더라면, 변호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나았다.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정당하고 공정한 판결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재판에서 느낀 바처럼 법정모니터링 활동은 나로 하여금 단지 법관들이 성실하게 재판의 임무를 다 하느냐를 감시하는 것에 더해, 현재 내 생활반경의 전부인 학교 밖 사회에 대해 좀 더 냉철한 시각을 갖고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소액 재판은 형사․민사 재판에 비해 방청하기가 좀 더 수월하였고 훨씬 현실감이 있어 더 흥미롭게 모니터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 활동을 하기 전에 나는, 재판을 받으려면 거의 대부분 변호사를 선임해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액재판의 경우는 변호사 없이 재판 당사자가 원고/피고석에 앉아 직접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액재판에서의 판사는 마치 마을에서 사소한 분쟁이 일어나면 이를 공정하게 해결해주는 ‘동네 어르신’ 같은 존재 같아 보였다.
형사․민사 재판과는 달리 판사는 재판을 진행 하면서 재판 당사자들과 함께 숨쉬고 함께 고민하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판사 한 명이 수십 개의 재판을 진행하여,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 소액재판 법정에서는 판사가 오후 재판을 시작하기 전, 재판이 너무 많이 밀려있으니 당사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법정에서는 간략히만 하고 후에 조정위원회에 가서 자세히 말하라고 당부까지 하였다.
조정위원회란 일 처리의 효율성을 도모함과 동시에 각각의 사건에 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한 제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에 대한 보충 및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 반대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은 판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재판 제도와 절차상의 문제이다.
요즘 보다 양질의 법률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변호사 수를 늘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로스쿨이 설립된다 하여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판사의 수도 늘리고 한 명의 판사에게 좀 더 적은 사건을 맡기는 것 또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1학기, 법률소비자연맹을 통해 나는 약 30시간이 조금 넘는 사회봉사활동을 했다.
때로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재판을 보기 위하여 허겁지겁 법원을 찾아가야 했고 법원 특유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나 역시 위축된 적도 있었으며 주말에는 학술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하여 분주히 움직여야 했지만 이 모든 활동과 경험들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특히, 강의실 밖으로 나가 직접 현실과 부딪치는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 법률정의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법원의 공정성 감시가 주요 목적인 법정모니터링 사회봉사 활동에 나의 작은 참여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생들의 이러한 활동이 꾸준히 지속되고 그 작은 참여들 하나하나가 합해지면 법률소비자연맹은 분명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