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불순했던 의도로 시작했던 봉사활동이었지만..-건국대 경영학과 유수진
법률연맹
2009-03-17 00:00:00
541
처음 사회봉사라는 과목을 신청하고자 했을 때의 목적은 불순했다.
그저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몇 줄 더 들어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 사실 부끄럽기만 하다.
동기야 어찌되었든 나는 사회봉사에서도 법정모니터링이라는 것을 신청하게 되었고 드디어 3월 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되었다.
법률 소비자 연맹은 생각보다 컸다.
여러 학교에서 찾아온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장소에서 이틀 동안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합쳐서 무려 7시간에 달하는 시간이라 사실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누차 총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니터링은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하셔서 인지 몸은 힘들어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뿌듯했다.
드디어 처음 법원에 가는 날이었다.
TV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법원의 이미지는 딱딱하고 무섭고 무언가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다가가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약간 긴장을 한 상태에서 우선 민사법정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정말 법정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신기하기만 했다. “
오오 이 장면 TV에서 봤어~” 시골에서 갓 올라온 사람이 서울구경 하듯이 그렇게 처음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그날 그 법정은 사건 사이사이에 시간이 좀 있었는데 그때마다 판사님이 학생은 어떻게 왔냐며, 무슨 공부를 하냐며 물어보시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니터링 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판사님이 “아이고.. 나 그거 제일 무서운데” 하시면서 웃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 결코 법조계에 몸담은 사람들이 나에게 먼 존재도, 어려운 존재도 아님을 느꼈다.
국민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분들도 역시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더 이상 내가 이곳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는 모니터링이 재미있기 시작했다.
특히 형사재판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피고인들 중에는 교도소에서 바로 온 사람들도 많고, 정신이상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이 재판장에 들어와 방청석을 한번 쫙 훑어봤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섬찟했다.
잔인한 범죄 행위에 대한검사와 변호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가 찼으며, 어느 날은 공무원이 뇌물수수 혐의 때문에 재판장에 나왔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뻔한 것에 대한 횡설수설 되지도 않는 변론 장면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날은 종친회에서 재산을 빼돌린 것에 대한 것이 고등법원까지 올라왔던 경우였는데 가족끼리 저렇게 치사해 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씁쓸했던 적도 있었다.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다. 동기는 불순했지만 지금은 정말 하기를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법정에 들어가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뿐더러 법 자체가 국민들을 위해 있다는 생각보다는 무섭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했을 것이다.
또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친절하시다는 것을 느꼈던 게, 행정보조를 하면서 하루에 나 같은 봉사 지원자들이 똑 같은 내용의 전화를 몇 십 통은 오는 것 같았지만 정말 받을 때마다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시는 것에 감동받았다는 말이 아깝지가 않았다.
이미 교육 때 설명했던 걸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사실 목표는 해야 되는 시간을 넘어서 넉넉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학기 중에 입원을 하느라 그렇지 못하게 겨우 시간을 채웠던 게 아쉽기만 한다.
이번 학기를 끝내고 휴학을 할 예정인데 휴학기간 동안 따로 신청해서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그때에는 이번에 하지 못했던 언론이나 의정 모니터링을 해보고 싶다.
취업해서 사회에 나가면 이런 기회에 참여할 시간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남는 게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인지 다음 번엔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몇 줄 더 들어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 사실 부끄럽기만 하다.
동기야 어찌되었든 나는 사회봉사에서도 법정모니터링이라는 것을 신청하게 되었고 드디어 3월 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되었다.
법률 소비자 연맹은 생각보다 컸다.
여러 학교에서 찾아온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장소에서 이틀 동안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합쳐서 무려 7시간에 달하는 시간이라 사실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누차 총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니터링은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하셔서 인지 몸은 힘들어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뿌듯했다.
드디어 처음 법원에 가는 날이었다.
TV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법원의 이미지는 딱딱하고 무섭고 무언가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다가가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약간 긴장을 한 상태에서 우선 민사법정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정말 법정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신기하기만 했다. “
오오 이 장면 TV에서 봤어~” 시골에서 갓 올라온 사람이 서울구경 하듯이 그렇게 처음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그날 그 법정은 사건 사이사이에 시간이 좀 있었는데 그때마다 판사님이 학생은 어떻게 왔냐며, 무슨 공부를 하냐며 물어보시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니터링 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판사님이 “아이고.. 나 그거 제일 무서운데” 하시면서 웃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 결코 법조계에 몸담은 사람들이 나에게 먼 존재도, 어려운 존재도 아님을 느꼈다.
국민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분들도 역시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시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더 이상 내가 이곳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는 모니터링이 재미있기 시작했다.
특히 형사재판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피고인들 중에는 교도소에서 바로 온 사람들도 많고, 정신이상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이 재판장에 들어와 방청석을 한번 쫙 훑어봤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섬찟했다.
잔인한 범죄 행위에 대한검사와 변호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가 찼으며, 어느 날은 공무원이 뇌물수수 혐의 때문에 재판장에 나왔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뻔한 것에 대한 횡설수설 되지도 않는 변론 장면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날은 종친회에서 재산을 빼돌린 것에 대한 것이 고등법원까지 올라왔던 경우였는데 가족끼리 저렇게 치사해 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씁쓸했던 적도 있었다.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다. 동기는 불순했지만 지금은 정말 하기를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법정에 들어가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뿐더러 법 자체가 국민들을 위해 있다는 생각보다는 무섭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했을 것이다.
또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친절하시다는 것을 느꼈던 게, 행정보조를 하면서 하루에 나 같은 봉사 지원자들이 똑 같은 내용의 전화를 몇 십 통은 오는 것 같았지만 정말 받을 때마다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시는 것에 감동받았다는 말이 아깝지가 않았다.
이미 교육 때 설명했던 걸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사실 목표는 해야 되는 시간을 넘어서 넉넉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학기 중에 입원을 하느라 그렇지 못하게 겨우 시간을 채웠던 게 아쉽기만 한다.
이번 학기를 끝내고 휴학을 할 예정인데 휴학기간 동안 따로 신청해서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그때에는 이번에 하지 못했던 언론이나 의정 모니터링을 해보고 싶다.
취업해서 사회에 나가면 이런 기회에 참여할 시간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남는 게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인지 다음 번엔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