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생각지도 못한 보물, 법률연맹에서의 봉사활동- 서울대 인류지리학과 주현주
지인과 헌책방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적이 있었다.
그때 책을 고르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다 그분이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책이 정말 값진 보물일 수가 있지󰡓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비록 헌책방에서 얻은 것은 아니자만 이번 학기에 나도 보물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친구의 제안으로 솔직히 별 생각 없이 신청한 사회봉사 교과목이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사회봉사가 끝난 지금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무언가를 느낀데 대한 뿌듯한 마음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회봉사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했으니 이 소감문에서는 말 그대로 ‘소감’만 말할 것을 전제하겠다.


사회봉사 교과목을 신청하기 몇 달 전에 혼자서 재판을 방청하러 갔던 적이 있었다.
형사재판을 갔었는데 검사와 변호사가 증인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 변호사가 변호하는 모습, 판사가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성심껏 들어주는 모습을 보고 내심 감동하며 가끔씩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수강신청 기간이 되었는데 친구가 법정 모니터링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하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냥 생각 없이 방청을 갔을 때와는 달리 모니터링을 하러 가니 뭔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법원에 들어가서 ‘오늘의 재판’을 본 후 내가 원하는 재판정을 찾아가려 했다.
평소 길을 잘 찾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법원 안에서는 주어진 안내판을 보고 원하는 재판정을 찾아들어갈 수 가 없어 헤매게 되었다.
법원 안이 미로처럼 이곳 저곳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끝내 내가 원하는 재판정을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갔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법원에서 안내해주시는 분들께 물어봐도 되긴 하지만 긴장하고 온 사람들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우선 재판정을 안내하는 표시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들어선 재판정의 분위기는 제각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소액 재판정을 제외한 재판정은 그곳 안에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서 인지 들어갈 때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진 곳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불성실해 보이는 사람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열심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끔씩 정말 열심히 받아 적으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판사도 있었는데 그런 분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씩 재판 중에 조는 판사, 대기 중에 자는 변호사, 아무 일 하지 많고 등받이 의자에 가만히 기대어 있는 검사들도 있었다. 적게는 금전적인 문제에서 크게는 한 인간의 인생 자체가 달린 사안에 그와 같은 안일한 태도를 보일 수 가 있다는데 대해 그들의 방관자적인 태도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기사를 열심히, 많이 읽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눈앞에 신문이 있으면 읽는 정도였지 굳이 찾아 읽는 정도는 아니었고 더군다나 인터넷 신문사 사이트는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내가 언론 모니터링을 한다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또 기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주차 모니터링을 해보고는 (이런 말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주제는 ‘한나라당 권력 지형 보도 경향 분석’이었는데 양 신문사간의 기사 보도 량의 차이에서부터 한 사건에 대해 매우 다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기사에까지, 한 번도 기사를 특히 여러 신문사의 기사를 비교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참으로 흥미진진하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주씩 차차 지나다 보니 한 사건이 커다랗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내게 말할 수 없는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답답한 그네들만의 고리타분한 권력 다툼인 줄 알았던 정치가 한 세력의 부침 또 다른 세력의 대응,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 또 그것을 이용한 재기 모색 등의 모습을 보며 정말 재밌는 살아있는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간사가 흘러가는 큰 줄기와 그 안에서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게 인간 삶이구나’하는 깨달음이라 하기에는 턱없이 얕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번 봉사활동을 하며 인간사를 깊이 음미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얼핏 핥아봤다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재판정에 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가장 가깝다 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사회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사람들끼리 재판정에 오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 에게 잘해야겠다는 너무 기본적인 사항이기에 다시 상기시키기에는 멋쩍은 깨달음을 다시 얻었다.
또, 인간이 사는 모습이 웬만한 소설보다 더 생생하고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도 훗날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삶 한번 참 잘 썼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생동감 있고 후회 없도록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동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멋지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