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나에게 '봉사'라는 것 -서울대 중어중문 범윤미
'봉사'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묘하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나는 학교에 사회봉사라는 '수업'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욱 머릿속이 흐릿해졌다. 봉사활동이 수업이 된다는 것은 중․고등학생이 봉사활동시간 채우는 활동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봉사'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태껏 내가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질문 중 하나였다. 중․고등학교 때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각종 봉사활동을 찾아 하면서 '봉사인데, 왜 이렇게 하기 싫은 것까지 해야 하지?' 하고 어린 마음에 고민만 하다가 결국 나오지 않는 답을 찾기를 포기했던 터였다. 당시 나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다. '학생들을 시켜서라도 해야 할 정도로 봉사가 사회에서 간절한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이 봉사를 알아야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봉사를 알아야 되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대충 시간 채워서 학교에 내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걸까?' 등등. 어쨌든 의문의 요지는 도대체 봉사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답을 쉽게 찾았다. 첫 시간 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고민의 끈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특히 담당 선생님의 'Social Service'라는 한 마디가 마치 정수리에 박힌 화살처럼 머릿속에 박히자 생각은 또 다른 꼬리를 물고 부드럽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너희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희생하고 내준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오히려 건방지다." 대충 요지는 이러했던 것 같다. 봉사를 하면서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건방져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굽실굽실 대고, 괜히 봉사하는 곳에 내가 방해될까 부담되고 그래서 소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희생'하러 가서 사람들에게 건방져 보일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그만큼 오만하였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나는 '奉仕'가 주는 '착한 사람 이미지'에만 지나치게 미련을 가졌던 거였다. 어떤 면에서 이는 봉사에 대한 일종의 미화(美化)일 수도 있다. 봉사를 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훌륭해지면, 우리는 그것을 '동경'하지, '체득'하지는 못하게 된다. 이게 미화된 봉사의 맹점이다. 그래서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쉽게 봉사에 손을 대지 못한다. 돈을 주려니 나도 넉넉지 않고, 시간을 빼자니 따지고 보면 할 일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소위 '진정한 봉사마인드'를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학교에서 봉사 과목을 만든 것은 학생들에게 사회 서비스 마인드를 배우고 그 경험을 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선택한 활동이 시민단체봉사활동은 이런 마인드를 체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가 이 하루하루 바쁘고 빠듯하게 살아가는 시민단체 직원들에게 무엇을‘줄 것인가’만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내가 희생과 봉사를 한다는 괜한 오만감만 들 수 있다. 나는 그곳에 무엇 하나라도 ‘배우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사회서비스를 배우고, 내가 어딘가에 가서 무엇을 하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체득하고, 나아가 앞으로는 이 수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험을 쌓기 위해, 거창하지만 오만하지 않게 법률소비자연맹을 찾은 것이다. 나에게는 이만한 수확도 없었다.

한 학기 활동이 내게 남긴 것

시민단체는 주로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고, 나는 이를 교과서를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험 없는 이론은 그저 입에 꿀 발린 소리와도 같다. 시민단체가 하는 감시와 비판의 대상은 법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언론, 국회, 타 NGO 등 수없이 많았다. 열악한 환경 아래에서 그런 방대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념과 그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열정만으로도 되지 못할 일이다. 이번 봉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의 시민단체의 위치와 내가 한 활동의 내용의 측면에서 다양한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맡은 일은 언론모니터링 작업이었고, 맡은 주제는 학과의 영향을 받아 ‘동북공정과 한국사 왜곡의 실상’이었다. 마침 개천절을 맞아 국내에서는 백두산이나 고조선 등 고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흥하던 때여서 언론 매체에서도 기획, 탐사 보도 자료를 많이 구할 수가 있었다. 특히 이 주제는 예전에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 본 적이 있는 주제여서 이번 작업은 그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중국 유학 중에 서점에 가서 중국고대문화자료를 소개한 관광책자를 본 적이 있는데, 고구려고분이나 발해 유적지, 백두산 등이 중국의 역사 유적지로 곧잘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국수적인 민족주의를 들이대면서 무조건 매도(罵倒)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의 그러한 움직임이 옳다고도 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쉽사리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언론모니터링은 그런 고민을 심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되어 주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자료를 누군가를 위해 해준다는 생각은 버리고 이 기회를 통해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생각을 하니 작업 하나하나가 더욱 진지하고 성실해졌고, 좋은 계발(啓發)의 기회가 되었다.

언론모니터링이 내가 처음 선택한 내 임무였다면, 국정감사 모니터링은 법률소비자연맹이 내게 준 임무였다. 연맹 측에서 가을학기에는 국정감사가 꽃이라며 봉사자들에게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기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정감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국회 산업자원부의 현장 감사를 방청하기 위해 아침 일찍 목적지로 향했고 처음으로 나 자신을 NGO로서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감사 현장에는 NGO만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현장에 NGO라는 감시 단체가 있음으로 해서 국정감사현장은 상기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오래 전에 TV를 통해 본 국정감사의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건성건성’과 정당 싸움이 만연한 장소가 내가 기억하는 국정감사 현장이다. 물론 올해에도 이런 사태가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참여했던 국감 현장에서는 감시와 경계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상임위원회 의원들은 국감 현장을 통해 하나의 성과를 이루고 자신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싶어 하였다. 방만(放漫)과 나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비록 홍보의 목적일망정 남보다 더 잘하겠다고 성실히 자료 조사에 임하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이는 어느 시각에서 보아도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이젠 막강해진 시민의 힘, NGO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법률소비자연맹에서도 8년이 넘도록 이 힘든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는 데에는 이러한 사명감이 크게 작용해서 그렇게 아닌가 싶다.

나는 시민단체에서 봉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 자신 또한 하나의 NGO가 될 수도 있다는 묘한 자신감에 사로잡혔다. 어떤 면에서는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생산 활동도 없고 따라서 산출할 이익도 없는 집단이 성쇠를 반복하며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이미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만큼 열정과 사명감이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곳에 왜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 또한 이 안에 있다. 봉사는, 우리 경제시스템의 경쟁 관계의 열외에 있는 집단에 대한 관심이며, 대상에 따라서는 관심 그 자체가 이미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 집단에 완전히 찬동하지 않는 이상, 또는 직원이 아닌 이상 우리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고, 그 관심 자체가 시민의 존재를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생산물을 낳지는 않지만 열정을 낳고 사람 사이의 믿음을 낳는다. 봉사란 그런 게 아닐까? 쳐다봄으로써 관계가 생기고 믿음이 생기며, 그 시선으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사회관계에 대해서 배운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 많은 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학교가 아니라 '사회'를 배우는 것, 또 다른 관계의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사회봉사과목의 강의목표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사회봉사는 내가 들은 수업 중에 가장 인간적인 강의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