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학문적 호기심 해소와 공익에의 기여-한양대학교 법학과 김대규
2008년 겨울계절학기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검색하던 중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주관하는 법정모니터링이 눈에 띄었다.2008년 가을학기에 민사소송법1과 형사소송법1을 수강하였던 나로서는 강의실에서 배웠던 소송법과 그 이론들이 실제 법원의 재판과정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따라서 이번 겨울에 이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선택함으로써 학문적 호기심 해소와 모니터링 활동을 통한 공익에의 기여라는 2가지의 목표를 한 번에 이루어 보고자 하였다.

나의 첫 방문지는 광주지방법원이었다.
처음 법정에 들어설 때는 상당히 긴장되었는데, 대부분의 방청객들과 소송관계인들이 4~50 대의 사람들이었던지라 어린 학생인 나는 눈에 띄기 쉬웠고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법정은 원칙적으로 공개재판주의를 취하고 있어 누구나 자유로히 방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이 법정 저 법정을 열심히 돌아다녔고 나만의 법정공포증은 치유될 수 있었다.

내가 주로 방청한 법정은 형사법정이었는데 저번학기에 형사소송법을 보람있게 수강한 이유도 있겠지만 동등한 지위를 지닌 사인간의 다툼인 민사소송과는 달리, 방대한 수사력과 막강한 권한을 지닌 검찰과 일개 피고인이 당사자가 되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당사자지위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는 매우 흥미로운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배웠던 형사소송법의 무죄추정의원칙, 진술거부권, 변호인의조력을받을권리 등은 피고인이 거대한 국가기관인 검찰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무기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기들은 실제 형사소송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피의자가 기소되어 정식재판에 회부되었더라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의 추정을 받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형사소송에서는 유죄추정의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가 미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미국의 형사재판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피고인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구치소에서 수의를 입고있다가도 법정에서는 말쑥한 정장차림을 하고 등장한다. 이는 영화라서가 아니라 피고인이라도 판결의 확정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에 법정에서는 수의를 입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정에서 구속수감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등장했다. 재판 시작도 전에 사실상 피고인이 유죄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수의를 입고있는 피고인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에게 어쩌면 당연시 생각될 수 있는 관행일 수도 있겠지만 법학도인 나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데, 진술거부권의 경우 형식적으로나마 잘 보장되고 있는듯 하였다. 내가 참관한 모든 법정의 재판장은 인정신문 전에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였는데 단순히 `진술거부권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판사부터 `말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라고 풀어설명해 주는 판사까지 다양하게 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고인은 단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결같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는 피고인들 뿐이었다. 물론 검찰측이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를 제출하였거나 피고인이 진정으로 범죄사실을 반성하고 있을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진술거부권의 행사가 재판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보여져 양형에 불리함을 가져오기 때문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현직에 있는 법조인들도 분명 형사소송법상의 무죄추정의원칙이나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사실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중 대다수는 나처럼 법조인이 되면 이러한 부조리함을 없애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들 법조인들에게서 변화의 의지를 읽기는 힘들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이번 법정모니터링 사회봉사는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인 우리 법조계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