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주저없이 또 신청한 봉사활동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박예슬
지난 학기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나는 이번에도 주저 없이 연맹을 선택하였다. 지난 학기 막바지에야 참여하게 된 법정 모니터링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법원의 생리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겨울 계절학기는 바야흐로 ‘송구영신’의 시기였고 그 많던 세미나들은 물론 법원에서 처리되는 재판 건수도 가을 학기때처럼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런 저런 모임에 불려가느라 몇 개 되지 않는 재판을 위해 하루 종일 법원에 앉아있을 짬을 차마 내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어떻게 이번 봉사활동을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해 하던 차에 연맹에서 나에게 추천해준 것은 바로 ‘언론 모니터링’이었다. 나는 이미 지난 학기에 언론 모니터링을 수행하려 시도해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고-이과 전공으로 이어지는 학과 과정을 밟는 동안 사회, 정치에 관한 내 시야와 지식은 매우 협소했고 때문에 언론에서 떠드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지, 어떻게 모니터링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포기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모니터링 예시도 읽어보고 내가 맡은 이슈 모니터링 주제인 ‘방송법 개정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했다. 지난 포기를 만회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고 이것이 내 협소한 사회지식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연맹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 보수 신문인 한겨레와 중앙일보를 모니터링 했고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내가 문과 계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 되었든 그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도무지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고 찾는다 해도 억지로 짜 맞춘 의견이기 일쑤였기에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결론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선입견은 곧 오산임이 드러났다. 한 달이 넘는 모니터링 기간의 기사를 직접 신문으로 읽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기사를 수집했는데 혹시 내가 검색용어를 잘 못 지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사 수에서부터 차이가 났고 기사 제목만 보더라도 각 언론사가 표명하고 있는 입장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방송법 개정안의 발의를 두고 이것을 해석하는 관점, 언론 노조의 파업에 대한 태도 등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상반된 태도를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찬찬히 모든 기사를 읽자 막연하리라 여겼던 모니터링 보고서에 무엇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나는 반쯤 흥겨워서 언론사의 공정성, 자료 인용, 전문가 인용에 대해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걱정하기를, 분량을 채우지 못해 나중에 가서 일단 분량만 채우고 보자 라는 식으로 변질 될까 우려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요약하는데 고군분투할 지경이었다. 기사 내용의 차이는 물론 방송법 개정안 내부에서도 그것은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측면에서 해석을 하는지, 아니면 지난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나왔든 ‘경제적 논리’로 해석을 하는 지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공정함을 모토로 하고 있는 언론사에서도 서로 자신의 이익이 많이 반영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또한 용어나 인용에 대해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는데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얘기 할 때에는 ‘불법’이라던지 ‘음모’, ‘재벌 방송’ 등 좋지 않은 인상을 심게 할 수 있는 용어사용에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족벌 경영과 보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 ‘조중동’, ‘재벌’과 같은 단어는 그 내용이 어찌 되었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한겨레의 경우 민주당이나 진보계열 학자, 노조 위원장의 인터뷰를 많이 실었던 반면 중앙일보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나 공언련 자료를 인용하는 한편 노조 위원장에 대한 심층 인터뷰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주변에서 ‘조중동’과 관련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기에 나도 자연스레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기에 최대한 두 언론사를 공평하게 다루고자 하였으나 나도 모르게 중앙일보의 자료 인용 신뢰성이나 내용 편파성에 눈길이 더 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언론 모니터링을 하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다. 어렸을 적에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또 대학생이 된 지난 1년은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은 기껏 포털 사이트 제목만 흘끗 보고‘아, 이런 일이 있구나’하는 정도에 그쳐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식층을 이룰 대학생으로써, 나는 그 동안의 무관심을 버리고 앞으로도 신문이나 뉴스를 정기적으로 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판단하건데 앞서서 정치 연설을 하거나 선도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나처럼 정치와 사회전반에 관계가 거의 없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오늘 날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국회의 모습도 사라지고 좀 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을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