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후회없는 시간-서울대 법학과 이석준
사회봉사 수업을 통해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법원 변론절차나 판결선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에 법률소비자연맹을 통해서 법정모니터링을 신청했다. 1년간 휴학하다가 오랜만에 복학했기 때문에 처음에 학교 수업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고 사회봉사도 마찬가지라서 한정된 시간을 쪼개쓰는게 굉장히 힘들었고 노력을 많이 해야했다.

그런 노력과 비례해서 사실, 후회없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는 나로서는 학교와 시민단체의 보호아래 국정감사나 법원모니터링을 수행할 수 있는게 마지막일수도 있으며(물론, 나중에 비슷한 봉사활동은 할 것이다.) 모니터링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받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고 법조인으로서 첫발을 디디지만, 그에 걸맞는 활동을 하거나 사회경험을 쌓지 못했다. 특히, 국가와 사회, 서민들을 위한 정책, 법적용을 언제나 생각하지만 내 행동이 그 생각에 얼마나 따라왔는지 의문이었고 좀더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더욱 마음가짐은 아래로 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회봉사는 정말 미약하지만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을 했다.
사회봉사를 신청할 때 처음에 청소년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장애인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청소년이나 노인 봉사활동을 하는게 순서상 맞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꾸게 되었는데 그것은 청소년 봉사활동이야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법정모니터링은 내 전문성을 더 살릴 수 있어 더 정확하게 모니터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내가 좀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햇던 것이었다.
이번에 내가 참가한 주관시민단체는 법률소비자연맹은 이름에서 보듯 법정모니터링 전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외에 국정감서 모니터링, 의회 언론 모니터링 등 다양한 활동이 있었고 그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국정감사 모니터링과 학술세미나도 같이 하게 되었다. 일단, 난 전적으로 법정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참여한 만큼 그 쪽에 더 비중을 두기는 했다.

9월 말쯤에 법정모니터링을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고 경미한 사건들이었고 난 아무 감정도 갖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사건과 각 항목 등을 기록해나갔다. 그런데 두 번째 나갔던 법정모니터링부터 내 감정이 뒤흔들리게 되는데 그 날 두 번째로 갔던 법정이 형사법정이었는데 옛 되어 보이는 청소년 남자아이들이 피고인으로서 재판을 받는 것이었다. 또래 여자아이를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공소가 제기된 사안이었는데 방청석에는 피고인 아이들의 가족 특히, 어머니들이 울부짓는 것이었다. 순간, 법정은 숙연해졌고 나도 굉장히 감정이 착잡했다. 어린아이들의 미래가 벌써 교도소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재판장은 피고인의 미래도 걱정되지만 피해자 여자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겠냐며 절제되고 낮은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공감도 되면서 어떻게 하면 양 당사자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가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후 10월 중순에 국정감사 모니터링이 있었고 내가 했던 것은 국토해양위원회의 도로공사에 대한 감사였다. 난 성남시의 도로공사로 현장모니터링 나갔고 결론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무난하게 끝났다. 다른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다른 장소에서의 국정감사는 정쟁의 현장이 되었고 사건사고가 일어났던 것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랬다.
국회의원들 중에는 매우 성실하게 자리를 안 뜨는 의원들이 있었는가 하면 자기질의만 하고 서둘러 자리를 뜬 채 다른 의원들 질의는 전혀 경청하지 않는 의원, 심지어 질의도 안하고 10분 있다가 아예 나가버리는 의원들이 있어 오히려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 모습을 외국인들이 보면 어찌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헌법과 국회법에는 국회의원들의 성실의무가 명문상 또는 해석상 도출되며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데도 의원들은 상당수가 매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고 이를 보며 어떻게 하면 안 좋은 모습들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한 가지 시민단체와 관련해서 좋았던 점은 국감 피감기관인 도로공사 측에서 시민단체 자리를 따로 보기 좋은 곳에 마련하는 등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덕분에 편하게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와 닿은 느낌이 그 전까지 법률소비자연맹을 비롯한 시민단체 쪽에서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노력하여 지금과 같은 호의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자금도 인력도 부족하지만 열성으로 가시적인 결과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상당히 존경스러웠다.

국정감사 끝난 후 난 한참동안 학업 상 이유로 사회봉사를 수행하지 못했다. 졸업학기여서 논문도 써야했고 미리 공부할 것도 많았다. 그 후 11월 말에 학생들을 위한 법률교육을 주제로 하여 세미나가 있었는데 학술세미나로서 이를 수행하였다. 내가 초등 중학생 때는 법률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법률이라기보다는 질서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관련 과목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선택과목으로서 아이들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군사독재시대를 지나 민주주의국가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로서는 공정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헌법재판 등을 통해 실질적 법치주의 국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학생들에게 법률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판단해보았다.
학술세미나에서는 몇 분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발제자로 나섰고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았지만 사실 내용 자체는 다소 추상적이었고 전문성 있는 내용도 많았지만 아직은 법률교육자체가 걸음마 단계가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국가의 인적 물적 지원이 더욱 강화되지 않아야할까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12월 초에 나머지 법정모니터링을 몰아서 했는데 그 전만큼 인상이 강하게 오지는 않았지만 첫째, 젊은 법관이 공손한 말투와 웃는 인상으로 법정에 출석한 나이드신 당사자 분들을 편하게 해드리는 모습을 보며, 둘째,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밤에는 스트레스를 달래려고 음주량이 많을 법관들이 그 중 한명도 졸지 않고 재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셋째,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던 직원 분들을 보며 이제 막 예비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나는 좀더 웃을 수 있었고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사회봉사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매일 시험 과제 논문에 치어살고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쪼개서 사회봉사를 하며 물론 큰돈이지만 어떻게 보면 적을 수도 있는 수십만원 수백만원에 대해 거의 인생을 걸다시피하며 법정에서 재판을 할 수 밖에 없는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을 보며 법률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적용하되 구체적인 타당성을 참작하여 여러 가지 요소들을 비교형량 할 수 있는 훌륭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거듭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