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미래의 법률가를 꿈꾸며.-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임규리
법률연맹
2009-06-22 00:00:00
663
지난 해 로스쿨을 안타깝게 떨어졌다.
떨어지고 나서 떨어진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LEET 점수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학점, 봉사활동, 영어점수 무엇 하나 모난 것이 없었기에 난 내가 왜 떨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었고 떨어졌단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 달 정도 고민하고 나서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난 로스쿨을 가고 싶었던 것이지 정작 변호사, 판사와 같은 법조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로스쿨 입학에만 치중되었던 나의 관심이 교수님들 눈에는 법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단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문제점을 찾게 된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내가 이 길을 걷고 싶은 것인지. 사실 이 문제는 머리로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은 이왕 한번 해본 것이니 다시 해보기로 하되 이번에는 법조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함께 갖춰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고서 여러 정보를 접하게 되다가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봄 학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가장 눈에 들어 온 것은 당연히 법정모니터링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법원 한번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비 법조인으로서 법이 진행되고 법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갈망하지 않았단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었다.
보통 재판 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미국 TV 시리즈에서 나온 숨 막히는 법정 공방을 연상하곤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끔은 그럴 듯한 변론이 이어져 재판이 융통성있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이었다. 서면 제출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재판일을 잡고 그것이 주요 업무로 내 눈에 비춰졌다.
엄숙한 재판 법정에서 가끔씩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판사님들을 목격하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 자는 검사대신 판사가 증인심문을 하기도 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국선 변호사가 오지 않아 재판이 연기되는 일이었다. 말도 없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변호사에 고개 숙인 피고인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죄를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이가 법 앞에서는 공평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대리해 피고인을 변호해줘야 할 변호사가 오지 않는 것은 무책임해보였다. 분명 법은 공부하기 힘든 분야이고 그 지식을 어렵게 습득한 변호사는 전문직으로서 하나의 기득권층이 된다. 하지만 법조인은 책임이 무거운 집단이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되찾아줘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으로서의 혜택만 보려는 것은 법에 대해 불신을 낳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국선변호사가 재판에 오지 않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피고인까지 그럴 수 있다라는 태도로 그 상황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내가 법정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 종종 일어났다. 법조인 자체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된 일이기도 하면서 내가 어떤 법조인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방향점을 찾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었다.
떨어지고 나서 떨어진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LEET 점수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학점, 봉사활동, 영어점수 무엇 하나 모난 것이 없었기에 난 내가 왜 떨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었고 떨어졌단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 달 정도 고민하고 나서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난 로스쿨을 가고 싶었던 것이지 정작 변호사, 판사와 같은 법조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로스쿨 입학에만 치중되었던 나의 관심이 교수님들 눈에는 법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단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문제점을 찾게 된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내가 이 길을 걷고 싶은 것인지. 사실 이 문제는 머리로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은 이왕 한번 해본 것이니 다시 해보기로 하되 이번에는 법조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함께 갖춰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고서 여러 정보를 접하게 되다가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봄 학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가장 눈에 들어 온 것은 당연히 법정모니터링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법원 한번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비 법조인으로서 법이 진행되고 법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갈망하지 않았단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었다.
보통 재판 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미국 TV 시리즈에서 나온 숨 막히는 법정 공방을 연상하곤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끔은 그럴 듯한 변론이 이어져 재판이 융통성있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이었다. 서면 제출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재판일을 잡고 그것이 주요 업무로 내 눈에 비춰졌다.
엄숙한 재판 법정에서 가끔씩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판사님들을 목격하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 자는 검사대신 판사가 증인심문을 하기도 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국선 변호사가 오지 않아 재판이 연기되는 일이었다. 말도 없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변호사에 고개 숙인 피고인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죄를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이가 법 앞에서는 공평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대리해 피고인을 변호해줘야 할 변호사가 오지 않는 것은 무책임해보였다. 분명 법은 공부하기 힘든 분야이고 그 지식을 어렵게 습득한 변호사는 전문직으로서 하나의 기득권층이 된다. 하지만 법조인은 책임이 무거운 집단이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되찾아줘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으로서의 혜택만 보려는 것은 법에 대해 불신을 낳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국선변호사가 재판에 오지 않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피고인까지 그럴 수 있다라는 태도로 그 상황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내가 법정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 종종 일어났다. 법조인 자체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된 일이기도 하면서 내가 어떤 법조인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방향점을 찾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