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한학기동안 사법의 왓치독역할을 한 기억-서울대 노어노문 우원형
법률연맹
2009-07-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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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 이를 위한 사전 준비로서 법정에서 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사법과 관련한 학술행사에 참석해 현재 우리 나라의 법과 관련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배우자는 취지에서였다. 개인적인 진로를 위한 탐색을 사회봉사라는 형식을 빌어 학점까지 이수할 수 있다는 점은 금상첨화였다. 반면에 이미 갖고 있는 바를 다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의 봉사활동의 취지는 사실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 더 많은 것을 알고 익혀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를 갖고 시작한 사회봉사활동을 마무리한 지금, 지난 기간을 되돌아보면 초기에 마음먹었던 그러한 목표는 충분히 이루었다고 본다.
난생처음 법원에 방문해 엄숙한 재판정에 살짝 주눅이 든 경험도 있었고,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술행사나 세미나에 참석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를 녹음도 시켜가며 버겁게 쫓아가고 다시 정리하는 경험도 있었다. 그 기간을 돌이켜본 지금, 사회봉사는 보다 넓은 식견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갖게 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고 자신한다. 특히 사회봉사를 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험은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우연히 들어간 민사법정에서 몇 년 전 천성산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지율스님을 다시 뵙게 된 것도 이번 사회봉사가 아니었다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2004년 당시 천성산에 고속철도 터널을 뚫는 정부조치에 반대하여 그곳에 서식하는 도롱뇽을 원고로 삼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던 지율스님은 당시 단식투쟁의 흔적이 미처 가시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셨다. 이번에 민사소송을 낸 것은 일부 언론사가 자신을 상대로 낸 기사로 인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을 참관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당해 사건의 담당판사님에 있었다. 지율스님이 변호사 선임 없이 직접 변호하면서 법리적 변론에 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면서 변론을 법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했던 담당판사의 모습에서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판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율스님 또한 그런 판사님의 배려를 알고 있었던지, 재판이 끝난 후 함께 법원을 걸어 나오면서 판사에 대한 고마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재판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한․중․일․대만 4개국의 법학자가 모여 동북아의 사형제도에 관해 논의한 학술행사 또한 인상 깊었다. 그동안 막연히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내게 있어서, 각국에서 사형제도가 존치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검토는, 법이란 이상과 현실 속에서 어느 지점에 자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되었다. 누군가가 추구하는 이상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검토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다양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 기회였다.
이번 법률소비자연맹 사회봉사는 이처럼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제를 던져줌과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법 집행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법의 파수꾼으로 서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의미 있었다.
우리 나라의 재판은 어떤 주장을 하는 당사자의 권리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서 오직 판사만이 판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판사의 권한은 매우 중대한 것이다.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서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재판의 당사자에게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법조계에 몸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담당판사가 얼마나 당사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당사자들의 주장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를 제3자가 감시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일부를 내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지난 한 학기 사법의 왓치독 역할의 기억은, 미래에 법조인으로 활동할 내게 많은 가르침과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