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그야발로 버라이어티~-동국대 법 이규복



나는 대학교에 올라와 원래는 봉사활동을 자주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사회 경험과 교훈을 얻고 싶었지만, 1학년 때는 노느라, 2학년부터는 3년간의 사법시험 공부로 인해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올 해 시험에서 낙방 후, 처참한 심정으로 시체처럼 1학기를 살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고, 정신 좀 차릴 겸,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나의 심리상태를 전환도 시킬 겸, 이번 여름 봉사활동을 하기 결심하였다. 봉사활동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우연찮게 학교 게시판에서 법률소비자 연맹 전단지를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 물어본 후 신청을 하였다. 그 때는 얼떨결에 한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법률소비자연맹의 봉사활동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그리고 라이버티였다. 언론·국정·법정 모니터링, 행정봉사 등등 여러 가지 분야를 자신이 여건에 맞게 직접 선택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필수사항인 법정모니터링을 했다. 민사법원 3곳, 형사법원 3곳, 형사법원 3곳을 방청하였다. 법대생임에도 솔직히 법원에 와서 이렇게 오랫동안 골고루 방청한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법원견학문 쓰려고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땐 그냥 한 번 보고 느낌, 감탄만 썼었다.) 법원을 견학하면서 우선 느낀 점은 사건의 수가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재판 목록에 보면 하루에 30건을 넘는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재판이 거의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재판을 들여다보면 그 실상을 알 수가 있었다. 빠른 소송 진행을 위해서 구두재판보다는 거의다 서면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면 재판에서는 법률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소송을 진행할 수가 없어 변호사를 꼭 써야 하는데, 내가 본 모든 재판은 서면 재판으로 보였다. 변호사들은 들어와서 미제출서류가 없나 판사와 맞춰보고, 진술서, 증명서면, 증거물들을 제출하고 변론은 조금밖에 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변호사끼리 혹은 변호사와 검사가 대립해서 치열하고 논리적 공방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형사사건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공방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검사가 독보적으로 우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 그렇게 치열한 논리적 법정 반전드라마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소송구조에서,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빨리빨리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재판도 있었다. 변호사는 서류를 짜 맞추는 거의 송무담당 법무사처럼 보였다. 이런 법원의 실상을 보고 나니 로스쿨을 도입한 것이 꽤나 괜찮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복잡한 사건도 있겠지만 간단한 사건도 많은데, 법을 전공하지 않은 국민들은 간단한 사건조차도 서면재판으로 인해 수행할 수 없으니,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를 많이 배출한다면 소송 경제를 충분히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법정 모니터링은 앞으로 법조인의 길을 택한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유익한 경험이 되었다.

두 번째로는 6.2 지방의원들의 공약분석을 하였다. 우리나라 정치판의 형편없는 실상을 깨닫게 되었다. 국회의원 공약을 분석했으면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지방의원들의 정치판은 정말... 개판이었다. 공약을 공시하는 일정한 양식이나 기준들이 법률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각 의원마다 중구난방으로 공약을 공시하였다. 어떤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어떤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떤 의원은 자신의 카페에...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의원들의 공약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나마 공약란! 이라 만들어 놓으면 다행이건만, 홈페이지나 블로그, 카페의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정말 찾다가 너무 짜증나서, 그만두고 다른 봉사활동을 하려고 했었다. 어떻게 선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약을 공약란을 만들어 정확하게 공시를 하지 않고, 공지사항, 게시판, 20개가 넘는 사진첩의 칸 중 중간에 사진으로 찍은 공약 포스터나 올려 놓고, 그것도 성능 좋은 카메라로 구도를 잘 잡아서 화질 좋게 잘 찍었으면 괜찮으나, 흐리고 글씨가 작아서, 의원의 얼굴만 보이고 중요한 공약은 보이지도 않는 의원도 있었다.
공약도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지방 의원들은 선거가 고등학교 반장선거에 나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허황된 공약, 실효성도 없는 공약,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말뿐인 립서비스 공약이 많았다. 사회복지에 신경을 쓰겠다. 복지 쪽으로 예산을 끌어 오겠다면 어떻게 복지를 실행한 것인지, 예산을 언제까지 얼마나 끌어와서 뭘 짓겠는지, 무슨 제도를 만들 건지, 기존의 것을 어떻게 정비하고 개선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하나도 나와 있지가 않았다. 공약의 이행기한도 없었다. 10년 뒤, 20년 뒤 이사를 가서 그 고장을 뜰 때, 그 공약이 실행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포스터에 큼지막한 사진으로 얼굴 내밀고, 돌아다니면서 한 표 주십시오, 고개 숙이고, 웃고, 악수하는 식으로 선거가 치뤄지는 듯 보였다. 공약 분석을 하면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또 개탄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남자답게! 뚝심 잃지 않고 일관성 있게! 줄! 세워서 찍고 나온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나 또한 내 고장 일꾼, 행정가들을 뽑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약을 제시하였는지 검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당만 보고 줄을 세워 찍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거판의 분위기, 관행 등을 알고 립서비스 공약을 내세워 지역 살림을 하려는 정치인들이 더 나쁘지만, 나 자신부터가 변하지 않으면 이런 엉망진창인 선거 관행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선거가 있을 때는 나부터 관심을 갖고 인물 됨됨이, 공약을 분석하고, 정말 신중한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번 봉사활동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로는 언론 모니터링 중 사설분석을 하였다. 로스쿨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만큼, 시사에 민감하고, 나만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설 분석을 하면서 첫 번째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전반적인 색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문사들이 똑 같은 사건을 두고 제목, 부제, 지면의 위치, 어느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가에 따라 독자들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대체로 진보측 신문만 봐왔고, 보수측 신문은 개인적으로 답답하고 내가 보기엔 정말 무식한 사람들 생각 없이 하는 말 같아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언론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진보측 신문보다는 보수측 신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느꼈다. 신기한 것은 언론모니터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대다수의 보수측 언론을 진보측 언론보다 더 많이 접하게 되고, 그들의 생각, 바라보는 시각 등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까, 어느샌가부터는 이런 시각으로 글을 읽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100 보수측으로 돌아섰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수측의 논리와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전에는 당연시하게 바라 보았던 진보측의 신문도 잘못된 점이 있나 의식을 하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진보측 특히 한겨레 신문 같은 경우에는 그전에는 즐겨 보고 가끔은 글을 읽으면서 통쾌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 신문은 타당한 글도 많이 있지만 논조가 강경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런 보수적인 언론에 계속 노출이 된다면, 그리고 이를 여과 없이, 생각 없이,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고 무조건 수용을 한다면, 악랄한 언론플레이에 넘어갈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식견을 넓히고 나만의 가치관으로 기준을 세워서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신문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급했듯이 진보측 언론보다도 보수측 언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게 우리나라의 실정인 것같다. 진보측 언론사가 많이 생겨서 비율이 보수와 어느정도 맞는다면 언론에 노출되는 독자들이 어느정도 객관성을 지닐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미디어법의 통과로 인해 현실은 진보측 언론사보다 보수측 언론사가 앞으로 더 늘어나고 더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 언론이 너무 보수측으로 치우칠 것 같은 우려와 안타까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