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이전까지 생각하던 봉사의 개념이 바뀌는 계기-한양대 정책학과 최가영

법률 소비자 연맹에서의 봉사 활동은 이전까지 내가 생각하던 봉사 활동의 개념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내가 경험한 봉사 활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 이었다.

그러나 이번 법률 소비자 연맹에서 경험한 법정 모니터링 활동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내가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감시하는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었으므로 더 새롭게 다가왔다. 또한, 법학 수업을 들은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직접 재판 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봉사 활동으로서 갖는 의미에 더하여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 법정 모니터링 활동을 위해 법정에 들어설 때는 ‘정말 내가 다른 사람의 재판 과정을 참관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막연한 걱정으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참관 내내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부분을 내가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 법정 참관인석에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판사와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들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내가 법정 앞에서 이렇게 움츠러들었던 이유는 ‘법정 모니터링’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문지는 법정에 설치된 마이크의 소리가 명확히 들리는지, 변호사는 변호에 충실히 임하는지, 판사가 재판 당사자의 말을 막지는 않는지 등을 묻고 있었고, 나는 이러한 문항들에 답하기 위해 법정에서의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려 가면서 ‘재판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법조인이 아니라 법조인 앞에 서 있는 모든 시민들을 위해 법정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재판 과정을 참관하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판사 앞에서도 당당하게 재판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법률 소비자 연맹’의 홈페이지에 가면 “공정성을 상실한 공권력은 폭력이다”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보인다.
이 글귀를 보고 나는 법정 모니터링의 과정에서 내가 ‘폭력’을 수차례 목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속행으로 진행되는 재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재판 순서가 배정되어 있을 정도로 한 명의 판사 앞에서 많은 재판이 쉴 틈 없이 진행된다. 30분에서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살펴 본 내가 오랜 경험을 통한 판사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억울한 사람’과 ‘합당한 죗값을 치루지 않는 사람’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판사에게 하나의 재판은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 끝나지만, 판사 앞의 재판 당사자들과 그의 가족에게는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 될 수 있다.
법정 모니터링 중에 한 중년 남성이 경찰관에게 폭언과 협박을 한 혐의로 재판정에 선 것을 본 적이 있다.
검사 측에서는 이 사람이 재범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실형을 살 것을 주장했고, 변호인은 그가 이혼 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한 점, 올 가을에 딸의 결혼식이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선처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사람에 대한 재판이 그 날 완료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판결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딸의 결혼식을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과 일생의 한 번 뿐인 결혼식에 아버지 없이 입장해야 하는 신부의 마음을 생각하니 선처가 이루어졌기를 바란다.
만약 그 사람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면 그는 자신의 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고, 이것은 그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큰 죗값을 치룬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재판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법조인의 수를 조정하거나 사법 시스템을 개혁하는 등의 방법이 실행되어야겠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나를 비롯한 법률 소비자 연맹의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이 이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