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전공에 대한 고민에서 확신으로- 서울대 법 김지수

전공이 법학이 된 뒤로도 나는 늘 법학이, 법이 현실에 얼마나 닿아있는지 좀처럼 느낄 만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전공 서적은 두껍고 한자투성이로 어려웠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시험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가 온통 뒤섞여 어느샌가 법학과 법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마음 속에 가득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사회봉사 1을 수료한 뒤 사회봉사 2로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단체를 선택한 것은 이런 내심상태가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돌파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한 달이라는 짧다면 짧은 봉사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그 선택에 대한 소감문을 작성하자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 법정모니터링을 하기로 선택을 내렸을 때의 내심상태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에 차오르던 회의가 깨끗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최접점을 살펴보고 난 뒤에 새로이 생긴 생각거리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한 달이 적어도 4년 동안 법과대학이라는 곳에 적을 두고 보낸 시간이 학교라는 금자탑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찬찬히 성찰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말로만 듣던 법조인, 그들에게는 하루하루 평범하디 평범했던 일상의 시공간을 조금이나마 함께 공유한다는 생경한 기분을 처음 느꼈던 법정모니터링 첫날. 4년 간 숱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견뎌내며(?) 익힌 지식들이 그들에게는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다뤄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못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목적과 수단의 재설정을 일깨워주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또한 어찌보면 심드렁하기까지한 법정의 일상적인 풍경이 실은, 물위를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가 수면 아래로는 필사적으로 발장구를 치듯이 그 이면에 치열한 삶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등 법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이 봉사활동이 내게 남긴 소감이라는 것은 시민 주권의식의 함양, 법의식 함양 등의 숭고하고 공익적인 가치들과는 꽤 거리가 먼 개인적인 소회들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에 변명을 해보자면, 재판이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있으며 국민들은 얼마든지 자유로이 방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년 간의 수련(?)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데, 이제사 새삼스레 재판방청을 통해 법의식을 함양하게 되었다는 것은 전공과목에 대한 지극한 태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법정 모니터링이 내게 일깨워준 것은 법의식의 함양이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형의 것이 아니라, 법전공자로서의 정체성 각성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가사소송에 들어가서 종잇장 위에 적혀있던 재판상 재산분할 청구가 어떤 위력을 실제로 가졌는지를 당사자들의 절박함을 통해 몸소 느끼고, 소문으로만 듣던 판사들의 무시무시한 업무강도를 재판대에 쌓인 서류의 더께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엄청난 액수의 금액이 고작 어음이라는 한 장의 종이에 실려 아무렇지도 않게 탁구공처럼 법정 공방에 의해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보았으며, 법원의 문지방을 넘는 일이 개인에게 중환자실의 문지방을 넘는 것만큼이나 인생에서 커다란 사건으로 기억된다는 것 역시 형사 피고인의 가족들의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법정 모니터링이 졸지에 법전공자 자의식 모니터링으로 바뀐 게 됐다.


한 달 남짓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더 이상 회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전공이 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그 분명함을 나는 이 두 눈으로 확인했다. 회의의 두려움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환하기로 했다. 뚜렷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짐은 한결 덜은 기분이다. 이제 내가 스스로 치열한 생의 한가운데로 걸어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