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지만 -건국대 법 박종우
법률소비자연맹 봉사활동 소감문

건국대학교 법학과 4학년 박종우

1. 도전과 위기
저의 전공은 법학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제 목표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관이 되는 것이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판결문을 남기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2년간 열정을 쏟아 부었던 고시에서 두 번 연속으로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난 후 일단 복학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3월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비록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한 2년이었지만 제 선택과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었습니다. 다만 밀려오는 패배감과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아무리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 애써도 계속해서 저를 주저앉게 만들었죠. 2년 만에 돌아온 학교의 분위기도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이미 대부분 졸업을 해버렸고, 로스쿨 유치로 인해 신입생 없는 법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과 밀려있는 졸업학점, 형편없는 토익 성적과 이력서에 단 한줄 조차 쓸 것이 없는 경력, 쇠약해진 몸뚱이와 식어버린 열정. 도저히 ‘희망’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어느덧 20대 후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며 한사람의 어른으로서 몫을 감당하고 있었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억지로라도 다음 계획을 세우도록 절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어서 적당한 직장을 잡아 내 몫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방법을 몰라 허둥댈 뿐이었고, 지쳐버린 심신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습니다.

2. 재기의 노력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토익성적이나 자격증 등의 스펙 관리를 한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운동하여 건강을 회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앉아 있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기계적인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한 후로 더 이상 이런 생활을 계속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공모전에 도전했고, 토익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에 대해 알아보던 중 1학기 때 후배가 하던 법정모니터링 활동이 떠올랐습니다. 당장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히 물어보았고,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전공을 살려 올바른 법질서 확립을 위한 감시활동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또한, 식어버린 꿈에 대한 열정을 다시 지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장 법률연맹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봉사활동을 신청하려고 하였지만, 봉사활동 기간이 4분기로 나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쉽지만 새 학기가 시작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3. 봉사활동 시작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 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후 한 학기 동안 봉사할 봉사단체로 법률소비자연맹을 선택하였습니다. 이후 국회 헌정기념관과 법률연맹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법정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학교 근처의 동부지방법원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만에 처음 해보는 봉사활동 이었고, 법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찾은 법원이었습니다. 법관이 꿈이었음에도, 한 번도 법원을 견학하러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여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법원 정문을 들어섰습니다.
처음 법원에 들어설 때에는 누군가 붙잡거나 하지 않을까 하여 조마조마 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제지도 없이 법원에 들어갔습니다. 동부지방법원의 경우 건물 구조가 복잡하여 안내판을 보거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처음 가본 사람이 길을 제대로 찾기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어렵사리 길을 찾아 처음 들어간 법정은 형사 단독부 법정이었습니다. TV에서 봤던 웅장하고 근엄한 법정을 상상하며 들어섰지만, 단독부라서 그런 것인지, 지방법원이라서 그런 것인지 생각보다 법정의 크기는 아담했습니다. 법정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전혀 압도 당할만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오히려 살짝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단독부 사건이다 보니 경미한 사건이 대부분이었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스스로 변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판사도 판결을 내리려 하기보다는 피고인과 증인으로 출두한 피해자 간의 합의를 권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담한 법정의 크기와, 그다지 살벌하지 않은 분위기도 의외였지만, 가장 의외였던 것은 판사의 태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비춰진 법관들의 모습은 거만하고,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살펴본 판사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보다 친절했습니다. 변호인 없이 법정에 나온 피고인에게 차근차근 법률용어를 풀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이어질 심리 일정 등에 대해서도 차분히 설명해 주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합의부 법정에도 여러 차례 모니터링을 하러 법원을 방문 하였는데, 판사들 중에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피고인이 70이상의 고령이고 집이 경기도인 사건에서는 피고인을 배려하여 당일 오후에 판결 선고를 잡아주는 재판장도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재판장이 배석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이게 일일이 수고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장면도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이전에 법정을 찾아본 적이 없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러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언론의 견제를 통해 달라진 법원의 좋은 예가 아닐까 합니다.

4. 국정감사 모니터링
이번 학기 봉사활동의 특이한 점은, 법정모니터링을 하면서 가을에 진행되는 국정감사에 대한 모니터링도 함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정감사 모니터링은 국감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하는 현장모니터링과, 국회 안에 마련된 법률연맹의 임시사무실에서 실시간 영상을 통해 하는 화상모니터링, 그리고 인터넷 상의 ‘국회 영상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집에서 하는 재택모니터링이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국정감사 모니터링이었기에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현장모니터링을 해보고 싶었지만, 학교 수업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현장모니터링의 기회를 잡지는 못하였습니다. 대신 화상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하였는데, 이전 오리엔테이션 때에는 헌정기념관에만 들렀던 것이기에 본관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넓은데다가 입구가 여러 곳이어서 민원인용 입구를 찾지 못하여 한참을 헤맸는데, 국회 직원분의 도움으로 다행히 늦지 않고 화상모니터링 영상실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국정감사가 거의 하루 종일 이루어지다 보니 영상을 보며 감사 내용을 기록하는 것만도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모니터링 한 국토해양위원회의 10월4일 국정감사의 경우 7시간 이상 진행된 긴 감사였습니다. 사실 이번 모니터링을 해보기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들은 그냥 놀거나 싸우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의원들이 충실하게 감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이래서 의회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거대해진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원들과 그런 국회의원들이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제 모습에 뿌듯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영상을 다 본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꽤 큰일이었습니다. 설문부터가 법정모니터링 보고서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7시간 동안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나온 위원들과 피감기관장들 간의 질의·응답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하다보니 이렇게 많은 양의 보고서를 매년 수백 개 이상씩, 그것도 10년이 넘게 정리해온 법률연맹 관계자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민단체중 하나가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얘기가 함께 떠오르며 웃음 짓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5. 마치며
사실 이번 학기에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신청하고, 봉사단체로 법률소비자연맹을 선택하면서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남들 다 하는 봉사활동도 하면서, 학점도 채우고, 기왕이면 전공과 관련된 시민단체 활동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뒀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연맹에서의 봉사활동은 저에게 생각했던 것 이상을 얻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정감사 모니터요원 발대식에 참석하고, 법률연맹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법정과 국회를 오가며 모니터링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그동안 주권자로서의 권리 찾기에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법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법기관이나 입법기관에 한 번도 찾아가 본적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사실이었습니다. 굳이 법학 전공자가 아닐지라도 이러한 활동에 참여해본다면 한 사람의 주권자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봉사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김대인 총재님께서 해주신 말씀 한 구절이 떠올라 옮겨보며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하여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비록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지라도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끄집어내어야 만이 잘못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 잘못이 고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바꿔나가는 겁니다. 지난 20년 동안 법률연맹이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확하게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취지의 말씀이었던 듯합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그러한 잘못을 고치는 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라면서 이번 봉사활동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