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법률연맹 자원봉사를 마치며-경찰대학 법 윤찬영

저는 사실 다른 자원봉사자처럼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 이 땅의 사법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인재로서 자양분을 닦거나 로스쿨을 위한 스펙으로서의 조건같은 것은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가벼워서 부끄럽기까지 한 제 지원목적은 흥미였습니다. 사실 저희 학교 학생들의 방학은 고시나 CPA 같이 경찰 외적인 분야로 애초에 학창시절에 목표를 정한 학생들은 목표를 위해 가장 정진하기 좋은 시점이 방학이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중에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거나 독서를 하는 등 자기시간을 보냅니다. 취업걱정에서 자유로운 학생들이다보니 치열하지 않은 면은 있습니다. 저도 눈앞에 닥친 걱정이 없다보니 방학 때가 되면 다소 느슨하게 됩니다. 모범생으로 살아온 관성이 남아서인지 방학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여름방학 때부터 흥미있는 각종 대외활동을 찾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해 허둥지둥 정보를 찾다가 ‘법정모니터링’ 이라는 생소하면서 눈에 띄는 문구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재판은 법정드라마, 영화, 책 등 모두 간접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가족이 의료소송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 어렸던 터라 저는 재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법조인을 꿈꾸며 학창시절 공부를 했고 단순히 법학과라는 이유만으로 현재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저는 법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에 대한 설명을 읽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날은 잊을 수가 없는 것이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지 않은 추운 겨울날이었고 학교에서 방학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단순한 봉사활동 오티를 기대하고 방학의 기쁨에 부풀어있던 제게 오리엔테이션은 마치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연상시킬 정도로 타이트하고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제가 가장 감명받은 것은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국회의원들은 모두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데 오직 사법부의 구성원만이 국민의 선출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하면서 대법원장, 대법관 등의 민주적 선출을 주장하는 사법개혁의 내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챙기자는 친친사상도 저를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맥의 외연을 다양하게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친친사상은 그런 저에게 먼저 본인과 가까운 사람부터 챙기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제2회 전국고교생법정치아카데미에 전일멘토로서 참여하게 된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멘토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생각도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순박한 고등학생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단지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니터링용지를 보니 제가 고등학생 때 과연 저랬었나 싶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서 마련된 각종 특강들은 오히려 저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첫 날 Wayne Reeves 변호사님의 미국의 3가지 조정제도(mediation, arbitration, negotiation)에 대한 설명과 셋째날 검사 출신 변호사께서 현재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여러 사법적 이슈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열심히 배운 내용을 곱씹으며 또 혼자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더 알아본 점은 없는지 탐구하면서 오랜만에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멘토로서의 추억의 압권은 마지막날 토론과 모의재판이었습니다. 악법도 법인가하는 주제는 소크라테스 이후로 꾸준하게 제기되어왔던 전통적인 논쟁입니다. 저로서도 다시 한번 제가 저 주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논거를 재점검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의재판에서는 진짜 변호사처럼 정장차림으로 논리정연하게 변호사역할을 잘 수행했던 김다연학생과 모든 대사를 본인이 직접 사투리로 고쳐 실감나는 연기를 한 박관우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

법정모니터링을 했던 5일은 매일매일이 기대감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미국드라마는 수사물 또는 법정물이라서 재판의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비록 국가간 차이는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도 그럴지 매일같이 설렜습니다. 모니터링 3일차에 재판을 보고 친구랑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러갔는데 만약 재판을 본 경험이 없는 채로 영화를 봤다면 무비판적으로 영화를 수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영화에서 비판적으로 그려지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판사의 모습이 실제 재판에서도 나타나는지 더욱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상해치사에 관한 형사재판이었는데 피고인은 피해자의 친구였습니다. 처음에 합의하는 쪽으로 방향이 기울어졌는데 본 기일 전까지 피고인의 노력이 미온적이어서 증인(피해자의 어머니)이 합의할 여지가 없다고 한 것이 그 날 재판의 요점이었습니다. 증인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 측으로부터의 연락은 재판 기일 2~3일 전에만 오는 것이 전부였으며 피고인의 어머니는 “합의금을 구하고 있는 터라 바쁘다” 면서 핑계를 대었고 피고인으로부터 온 연락 중에서 진심어린 사과는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아카데미 때 배웠던 3가지 조정제도와 지난 학기 한 과목에서 배웠던 공감에 대한 대목이 생각났다. KBS에서 방영된 사회적 자본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태안 유조선유출 시 삼성의 사과와 도미노피자 CEO의 유튜브 동영상 파동 직후 사과를 비교하여 진심어린 사과의 위력에 대하여 설명한 대목이었다. 삼성의 사과는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뒤에 발표되었고 사과문에서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도미노의 사장은 점원이 피자에 이물질을 넣는 내용의 유튜브가 유출되고 논란이 되자 바로 전국방송으로 사과문을 내보냈으며 위생에 만전을 기하고 고객의 식품안전이 도미노의 최대우선과제라고 사과하여 오히려 주가가 더 오른 사례였다. 재판은 기일 하루 동안에 진행되는 것만 해도 시간과 비용이 소모가 막대할뿐더러 몇 년이 소요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사람을 매우 지치게 만든다.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고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진심어린 사과는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합의 선에서 조정될 수 있다. 생각건대 살인의 고의가 없었을 뿐더러 친구지간이었던 터라 진정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재판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 같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가 인생의 선배로서 피고인에게 충고하였듯이 진심어린 대처가 아쉬웠다.

학교 밖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을 9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면 아마 경찰관이 되어 증인으로 참석하거나 가족이나 지인 중에 재판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법원에서 재판을 방청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일 것이다. 또한 법률연맹을 하면서 사회의 굵직굵직한 정치적, 법적인 쟁점에 대해서 더 날카롭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법률연맹에서 봉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