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8학기만에 다시 찾은 법률연맹-서울대 법 김의중


1학년 2학기,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 1을 마친 이후 무려 8학기 만에 다시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2를 마쳤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또 짧다고 할 수 있는 캠퍼스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꼭 한번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사회봉사였습니다.

사실 졸업학기에 사회봉사를 신청하게 된 까닭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법시험을 그만둔 이후, 저는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주도적으로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봉사단체를 만들어서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일까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언뜻 구룡 마을이 눈에 띠었고 그곳에 있는 천주교 관련 공부방과 연락이 되어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성원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꼴이었기 때문에, 결국 각자 시간이 바빠지고 소수의 몇몇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려다보니 힘에 부쳐 사업이 흐지부지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은 둘째 치고,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한 때의 혈기는 이번으로 족하고 뭔가 제대로 경험하고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꼭 시민단체에 사회봉사를 신청해서 과연 시민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떤 목적으로 힘든 일들을 감당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제가 봉사했던 법률소비자연맹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그래서 때로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법률시장에서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를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는 시민단체입니다. 구체적인 사업으로는 법정모니터링, 국정감사모니터링, 국회의원선거 후보자의 공약 분석, 국회의원선거 당선자의 공약 이행도 조사, 각종 외국의 법률문서 번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하는 법률교육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행정봉사를 했습니다. 즉, 각종 봉사활동을 통해 문서화 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통계화하는 일에 대부분의 봉사활동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뚫어져라 엑셀파일을 들여다보면서 수치를 입력하고, 틀린 부분을 찾아내어 수정하는 지루한 4시간 30분의 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행정봉사를 계속 하면서 ‘내가 계속 엑셀파일만 들여다보려고 시간을 내는 것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헌법연습이라는 수업을 수강하는 중에 교수님께 시민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것은 건전한 정당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탓이며, 주요 정당이 보수적인 성향을 띤 채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하셨습니다. 미약한 정당의 정치적 도관으로서의 역할은 시민단체를 통해 보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사회봉사를 하면서 의회나 사법부에 대한 접근이 생각보다 굉장히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민단체가 민의를 직접 수렴하여 의견을 표출하든, 시민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에 힘을 쓰든, 어떤 방법으로든 국민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권력으로의 접근은 생각보다 매우 용이했고, 조그마하지만 체계적인 시민운동은 직접적으로 의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국민 개개인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건전한 정당민주주의의 정착도 요원한 것은 아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런 봉사활동이 모두 권력으로의 접근이며, 국가에 대한 책임성을 뭍는 행위라는 인식이 생길 때 엑셀파일을 수정하는 일들이 가치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제야 아무런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데도, 자신의 여가시간을 할애하여 시민 운동을 하는 분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그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면담을 신청해서 기관의 담당자와 시민단체나 법률소비자연맹의 운영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모든 분은 모두 무급으로 일하신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국가는 어떤 존재이며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념적 정체성이 없이는 사회 운동을 절대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좋은 의도로 시작한 사람들도, 명확한 자기이해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결국 상황과 현실에 매몰되어 변질되는 예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하려는 일에 목숨을 걸고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기만하고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이미 전례가 있는 저로서는 가슴이 찔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가슴에 더욱 깊이 새길 수밖에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를 조금더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정의·평등의 정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고, 양심적인 법조인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 없이 공부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제대로 서지 않고, 또 명확히 자신의 분야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설사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범부의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은 추상적이지만,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헌법에서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계속 탐구해봄으로써, 앞으로 저 스스로 학문적으로 연구할 방향과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대해 공헌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대학을 떠나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저의 공부의 방향이 나 자신만을 위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작게는 나와 우리가족, 넓게는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민족을 위해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그 길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참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었습니다. 덧붙여 특별히 시간을 내주시고 좋은 말씀을 해주신 법률소비자연맹 간사님께 감사드리고, 법률소비자 연맹이 공정한 권력의 감시기관이자 시민의 정치사회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감당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