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선배의추천으로 하게된 봉사활동 - 이화여대 이다영
법률연맹
2009-03-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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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아는 선배의 추천 때문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었다. 어렵고 딱딱할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마치고 난 지금은 뿌듯한 마음이 가득하다.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 국정 감사 모니터링을 하러 국회에 갈 때만 해도 TV에서만 보던 그 국회 의사당이 왜이리 크던지 기가 죽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던 것을 경비원 아저씨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고 자세히 알려 주셔서 들어갔었다. 들어가서도 정말 넓고 큰 건물에 혀를 내둘렀다. 국회에 들어 갈 때는 아무나 들어 갈 수가 없다. 출입증이 있어야 하는데 법률 소비자 연맹 국정 감사 NGO 모니터단이 국회 안에 있기 때문에 난 연맹에 연락을 한 후 다음날 국회의사당 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갔었다. 난 직접 들어 가진 못하고 모니터실에서 모니터링을 했는데 종일 속기를 하려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부장님은 감사에 직접 참관하시고 실장님은 계속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시는데 정말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 실시간으로 보던 모습을 집에 와서 9시 뉴스로 보니 재미있기도 했다. 성실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의 모습과 준비가 불성실한 피검기관의 모습을 볼 때는 어이가 없었다. 이 감사가 끝나면 법률소비자 연맹에서 우수국회의원을 뽑아 상을 주게 되는데 이 상이 매우 권위 있고 신빙성 있는 상이라고 한다. 이런 상을 뽑는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엉망일 것 같은 이 사회에서 뭔가가 조금씩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에서 모니터링 한 것은 더 흥미로웠다. 제일 처음엔 가정 법원에 가려고 하였으나 복도에 길게 줄 서서 웅성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혼률이 높다고 말로만 들은 것 같은데 실제로 이들의 대부분이 이혼 때문에 온 사람들이라 정말 실감이 났다. 그래서 민사 재판을 참관하였는데 처음 들어간 곳은 조정재판이었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가 앉아 얘기를 하고 판사가 중간중간 정리를 해주고 있었는데 판사가 원고와 피고에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존칭도 잘 쓰셔서 보기가 참 좋았다. 그런데 다음에 들어간 재판의 판사는 사투리를 쓰면서 은근슬쩍 반말도 섞어 쓰고 피고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민사가 재산권에 관련이 있다 보니 재판 수도 매우 많고 해서 길어야 10분이면 끝나게 된다. 사건 수가 많고 피곤한 건 이해하지만 판사의 그런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들어 간 곳은 형사재판이다. 중법원이었는데 증인 심문을 하는 날이었다. 죄수복을 입고 원고들이 나왔었는데 죄수복을 보니 좀 무섭기도 했다. 변호사와 검사가 증인에게 질문을 하고 증인이 답하는데 판사님께서 계속 자료를 보면서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하고 굉장히 열심히 보셔서 보기가 좋았다. 존칭도 꼬박꼬박 쓰셨다. 법원에 갔다 온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판사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들어가서 본 판사님들은 몇분만 제외하면 열심히 하시고 존칭도 잘 쓰셨던 판사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4분의 판사님들 중 1명이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마도 사법 연수원생같은 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판사님들이 남성인데 여성 재판관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자꾸 알아 가려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지 잘못된 점은 고쳐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다. 일하면서 더없이 소중한 경험들을 하고 간다. 예전에 실장님께서 여기서 일하면 또 오고 싶어한다고 하셨는데 이번엔 많이 부족해서 봉사활동 했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일도 잘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
법원에서 모니터링 한 것은 더 흥미로웠다. 제일 처음엔 가정 법원에 가려고 하였으나 복도에 길게 줄 서서 웅성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혼률이 높다고 말로만 들은 것 같은데 실제로 이들의 대부분이 이혼 때문에 온 사람들이라 정말 실감이 났다. 그래서 민사 재판을 참관하였는데 처음 들어간 곳은 조정재판이었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가 앉아 얘기를 하고 판사가 중간중간 정리를 해주고 있었는데 판사가 원고와 피고에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존칭도 잘 쓰셔서 보기가 참 좋았다. 그런데 다음에 들어간 재판의 판사는 사투리를 쓰면서 은근슬쩍 반말도 섞어 쓰고 피고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민사가 재산권에 관련이 있다 보니 재판 수도 매우 많고 해서 길어야 10분이면 끝나게 된다. 사건 수가 많고 피곤한 건 이해하지만 판사의 그런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들어 간 곳은 형사재판이다. 중법원이었는데 증인 심문을 하는 날이었다. 죄수복을 입고 원고들이 나왔었는데 죄수복을 보니 좀 무섭기도 했다. 변호사와 검사가 증인에게 질문을 하고 증인이 답하는데 판사님께서 계속 자료를 보면서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하고 굉장히 열심히 보셔서 보기가 좋았다. 존칭도 꼬박꼬박 쓰셨다. 법원에 갔다 온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판사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들어가서 본 판사님들은 몇분만 제외하면 열심히 하시고 존칭도 잘 쓰셨던 판사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4분의 판사님들 중 1명이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마도 사법 연수원생같은 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판사님들이 남성인데 여성 재판관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자꾸 알아 가려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지 잘못된 점은 고쳐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다. 일하면서 더없이 소중한 경험들을 하고 간다. 예전에 실장님께서 여기서 일하면 또 오고 싶어한다고 하셨는데 이번엔 많이 부족해서 봉사활동 했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일도 잘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