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내게 횃불이 되어줄 시간들-한양대 파이낸스경영 장유경
법률연맹
2014-12-11 09: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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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법조인이 되고자 결심했던 동기는 나름 뚜렷했지만, 높은 지위와 경제적인 요인에 혹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생업으로 삼는 것과 단지 꿈만 꾸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 단순한 진리를 올해 여름방학에 참여한 서울고등법원 인턴십을 통해 몸소 느꼈었다. 엄청난 업무량과 그 노력에 비한다면 결코 많다고 말할 수 없는 급여, 더운 여름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는 업무환경들은 모두 내가 바라던 미래가 결코 아니었다. 인턴십이 끝난 후, 내가 화려한 외면 안에 숨겨져 있는 치열한 현실을 몰랐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고이 간직해온 꿈을 모두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나온 시간들이 스쳐지나가면서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아팠다. 스스로에게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 때 만난 것이 이 법률소비자연맹이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갔을 때 엄청난 봉사자 수에 놀랐다.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법에 관심을 갖고 봉사를 해왔구나.’라는 마음에 진작 이 단체를 알았으면 좋았을 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듣는데, 모든 활동들이 너무나 흥미로워 보여 전부 참여하고 싶었다. 실제로 집에 오는 길에 이것저것 다 참여해야지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건지, 한 활동 한 활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매 활동마다 내 이름을 적은 보고서와 서류를 제출해야 했으므로 더 잘 쓰인, 보다 정제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참여한 영역은 법정모니터링, 국정감사 모니터링, 번역 봉사, 판결문 리서치였다. 네 활동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가장 기대했던 활동은 법정 모니터링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정감사 모니터링이었고, 번역 봉사는 가장 보람찼던 활동이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판결문 리서치였다. 그러나 네 활동 모두 값지고 뿌듯한 일이었고, 언제 다시 경험해보지 못할 좋은 시간들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을 기대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내 꿈에 가장 근접한 활동이기 때문이었다. 법원 인턴십을 하면서 재판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지만 짧게 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꼭 보고 싶었다.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사 재판과 형사 재판을 모두 보았는데, 눈에 띄었던 것은 민사와 형사 간 변호사의 모습이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민사에서는 변호사들이 매우 열정적이었던 반면, 형사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 다룬 사건들이 비교적 작은 사건들이었고, 국선전담변호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국정감사모니터링은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서 국감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국감 현장에 내가 직접 앉아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공기업을 감사하는 자리에서 위원들과 피감기관을 모니터하는 일을 하고 있자니, 내가 정말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국가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기분이었다.
또한 바베이도스와 도미니카 공화국 헌법을 번역하는 일도 했는데, 영어에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생소한 언어들과 긴 문장을 번역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열심히 번역한 결과물들을 보니 보람찼고, 국가의 형태에 따라 다른 법률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마지막에 한 활동이 판결문 리서치였는데 그 이유는 판결문을 메일로 전송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정보에 대한 원활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이 점에 대해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본 게 처음이어서 활동 내내 흥미로웠다. 1심, 2심, 3심 각각의 재판관님들이 어떤 근거로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분석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앞으로 봉사를 더 할 기회가 있으면 이 판결문 리서치를 중점적으로 여러 사건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다.
한 학기 동안 짧았지만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다시 소감문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분명히 나는 법조계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깨졌을 때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왜 법조인이 되고자 결심했었는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솔직하고 허물없는 성격 덕분에 친구들이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곤 했고, 난 그 고민들에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걱정해주며 나름대로 적절한 위로와 조언을 해주곤 했다.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중2 때 친했던 친구가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들어하다가 결국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울먹이는 친구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위로도, 조언도,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무력했다. 전학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이 세상의 모든 약자에게 &39실질적인&39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해온 일들, 상담해주고 조언해주고, 그런 장점들을 극대화하면서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직업은 다름 아닌 변호사였다. 그 때부터 내 꿈은 변호사가 되었고, 그것은 변호사의 지위가 혹은 급여가 낮아진다고 해서 변해서는 안 되는 강렬한 다짐이었다.
법정모니터링을 하던 중에 형사 재판 때 보았던 한 노부부가 생각난다. 노부부의 변호사는 국선전담변호사였다. 그 당시 나는 휴정시간이라 잠시 밖에 앉아있었다. 그 때 변호사가 노부부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일단 죄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부부는 죄가 없었다. 오히려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그 변호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은 내가 과거에 한 다짐을 되살아나게 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에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줄 것이다.
곧 대학교 4학년이 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법률소비자연맹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아니, 나는 이것을 필연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길 바란 신이, 대변해줄 세력이 없는 억울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켜주는 변호사가 한 명이라도 더 나올 수 있도록 마련해준 기회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나는 이제 이 횃불을 들고 이 길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막대기에 불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