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시민적 권리와 책임감을 배우다-서울대 서양사학 김경수

지난해 재미있게 봉사활동을 했었다는 친구의 추천을 받았을 때, 설렘과 사명감보다는 막막함과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법률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했기 때문인지, 법정이나 국회 등에서 이뤄지는 입법 및 사법 활동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법과 관련된 중대한 업무들은 사법고시를 통과한 법조계 엘리트들이나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법률소비자연맹의 봉사활동을 신청할 때는 시민적 권익을 지키겠다는 사명감보다는 그저 똑똑한 엘리트들이 활동하는 모습들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실제로 하면서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법률‘소비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많이 자각하게 됐다.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관련 활동들일수록 오히려 이 분야가 사법부 및 입법부 엘리트들만이 독점하는 영역으로 남지 않도록 시민들의 자발적인 감시와 견제가 계속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이 만들어진 것도 아마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법과 시민들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 일상과 생애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법률 관련 활동들 앞에서 결코 막연한 두려움만을 느끼지 말고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입법, 사법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시민적 소양인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참여했던 법정 모니터링은 이러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갖게 해준 계기였다. 봉사활동이 아니었더라면 거의 올 일이 없었을 법원에서 여러 재판들을 직접 참관하면서 법과 재판 앞에서 시민들이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되는 건 매우 쉽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일반 시민들이 알기 어려운 법적 용어를 특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 및 검사들이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시는 노인들에게 짜증을 내는 판사들 등을 보면서 법정에 나와 같은 일반 시민 방청객들이 아무도 없었더라면 재판 당사자들이 더 위축되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갖게 된 것이다. 첫 모니터링 때는 나 스스로도 위축된 채 재판정에 들어갔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공익적 활동에 이바지하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당당히 들어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재판을 참관하게 된 이유다.
국회의원 공약 이행률 조사를 하면서도 비슷한 깨달음을 갖게 됐다. 국회의원 후보는 지역 유권자들에게 지역발전의 미래상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투표의 가치를 체험한다는, 선거에 대한 교과서적인 통념과 달리 많은 의원들은 공약도 매우 막연하고 허황된 것들을 제시했고 당선 이후에 이를 실천하기 위한 활동도 벌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를 위해 선거 공약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5대공약과 선거 공보물들의 내용은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같은 당 지도자들과의 친분 과시, 지역감정에 대한 간접적 조장 등으로 점철돼있었고 구체적인 의정활동 계획은 유권자들이 확인하기 힘들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유권자들의 ‘정당만 보고 투표하기’ 등이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 이어져 오면서 선거를 통한 시민들의 주권 실현은 허황된 일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번 학기 봉사활동은 끝났지만 이 활동을 통해 얻게 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비판적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자각하며 사회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법률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은 결코 법조인들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공익에 이바지하면서 시민적 권리를 자각할 수 있게 해준 법률소비자연맹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시민운동에 사람들이 더 많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