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법원에 한번도 안가봤던 내가..- 건국대 고정은
처음에 사회봉사를 한다고 마음 먹었을때에는 그냥 양로원이나 고아원에가서 같이 이야기 하는 정도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사회봉사 목록이 있는 책자를 받아 들고는 정말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 곳곳의 여러곳에서 사회봉사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생각했던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빵을 만들까 아이들을 가르칠까 번역일을 할까 등등 많은 고민하다가 법정모니터링이라는 이색적인 봉사활동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것도 봉사활동에 하나라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법원이라는 곳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고 그런쪽에 관해 잘 모르던터라 이번기회에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평생 살면서 내가 법원을 몇 번이나 가게 될까 과연 한번쯤 갈 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이 것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는데 그것을 봉사로 할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들떴었다. 학교에서는 그 다음날 바로 봉사활동 신청을 하라고 했었는데 나는 이 봉사활동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친구들과 함께 원하는 곳에 봉사활동을 신청하기 위해 학교를 향했다. 그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복지처 앞에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정말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봉사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놀랐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법정 모니터링을 위해 며칠뒤 한국 법률연맹에서 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서울시내에 있는 각 대학학생들이 그곳에서 봉사를 하겠다고 모여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모든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마음은 계속 들떠 있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고 법률연맹 소개등 4시간 가량 진행이 되었다. 사실 그 시간은 봉사활동 시간중 가장 지루한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되었고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한 내용이라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왔던 점은 그 오리엔테이션에서 지난학기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중 몇명을 선발해서 상을 주었는데 3학기 이상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사람들도 많았는 점이다. 대부분이 법학과 학생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법학과 학생들중에는 4년동안 학교에서 배우는것보다 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더 값진것을 배운다고 말한 학생들도 있었고 타과 학생들중에서도 많은것을 느끼고 알게되었다고 했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나는 마냥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다들 내 학점 내 할일에 바삐 살고 있는 현실인데 이렇게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은 끝이 났다.

한 이주쯤 흘렀을까 본격적인 법정 모니터링을 하기위해서 수업이 일찍 끝난날을 잡아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 고등법원에 도착했다. 늘 무슨사건이 생길때 티비로만 보아오던 우뚝 솟은 법원 건물을 올려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사람들을 보며 나는 지은죄가 없으니 당당해지자며 혼자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안내원의 도움으로 나는 법정안으로 들어갔고 민사와 형사재판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었는데 왠지 형사재판이라는 말에 덜컥 겁을 먹어 처음엔 그렇게 민사재판을 보러 들어갔다.

이렇게 함부로 들어가도 되는걸까 하고 눈치를 살폈었는데 법정안에 있던 판사들과 변호사들은 잠깐 쳐다보니 별 동요없이 재판을 시작했다. 법정안에 있던 안내원은 우리같이 모니터링 하러 온 학생들을 전에도 여러번 만나본적이 있었는지 모니터링 하러 왔느냐고 묻더니 핸드폰을 끄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재판은 시작되었고 나는 난생처음 법정안에 들어온터라 기분이 설레었다. 내가 왠지 뭔가 대단한일을 하는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컴퓨터화된 시대라서 그런지, 법정에서 진행되는 내용은 컴퓨터로 입력되었다. 내가 상상해온 모습은 누군가가 일일이 재판내용을 받아적는 모습이었는데, 만약 여기 와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평생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재판 분위기는 엄숙했지만 주눅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판사들이 하는일이 저런일이구나, 변호사가 하는일이 저런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직업들을 직접 관찰할수 있었다. 생각했던것보다 중간에 많은 재판이 취소가 되었는데 대부분이 증인 부재로 인한것들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재판하는지 안올수가 있지라는 생각에 황당해 했지만 그 재판이 한번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긴것은 몇년씩 연장되어 왔다는것을 뒤늦게 알고는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재판을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판사가 "이렇게 해라"라고 탕탕탕 세번 두드리기보다" 그냥 적당히 합의 보시지요"라고 말하는 사건이 대부분이었다는것이다. 처음 몇번은 판사가 왜 그러는걸까, 혹 무능력 한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아주 명확하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명명할수 있는건 내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 법원에 가기만 하면 모든게 확실히 해결이 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일이 그렇듯 누가 그렇게 다 명확하게 판결 내려줄수는 없다는것을 알았다. 결국은 두 사람이 합의를 봐야하는것이고 그렇게 해서 끝을 보는 판결이 많았다. 흥미로웠던 점 하나는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연출되었던 때였다. 증인은 한 여자를 많이 보았다고 했는데 그 여자는 눈물로 호소하며 결코 증인을 본적이 없다라고 했다. 분명 둘중 한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있음이 명확했지만 결국 누가 거짓을 말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저런일이 실제로도 있구나 하며 흥미로워했었다.

그렇게 법정 모니터링을 하면서 생각했던것보다 여러가지로 실망한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높은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말을 짧게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변호사들도 자신의 재판이 아닌경우는 진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실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재판은 내 씁쓸한 기분을 조금 풀어주었다. 재판관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었는데, 교통사고 증인으로 나온 택시운전사에게 변호사가 조금 무례하게 대하자,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며 증인에게 판사가 직접 사과를 했다. 판사는" 죄송합니다, 바쁜시간 내셔서 증인으로 나오셨는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그런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의 보아왔던 재판장의 사람들은 강자앞에서 약하고 약자앞에서 자신의 힘들 과시하고 그들을 억누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판사앞에서는 "판사님~"이라고 꾸벅 절을 하며 증인 앞에서는 소리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지막 판사의 정중한 사과는 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봉사활동 30시간이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을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30시간동안 나는 내가 알지못한 사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많은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잇는 지금 이 시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려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는 것과, 마지막 판사가 보여줬던 행동처럼 강자앞에서 강해지고 약자앞에서 정중해지는 마음가짐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조금더 훈훈하게 해준다는 명백한 사실이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