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배고품의 풍요로움 - 한양대 역사학 이은빈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시작한 사회봉사. 꼭 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학교 수업 이외의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신청한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감회가 남달랐다.
무엇으로 할까 찬찬히 돌아보다가 이번 학기부터 주전공인 역사학과는 별도로 법학을 새롭게 공부하기로 작정한 터여서 학과 공부에도 도움이 될 거 같은 법률소비자연맹의 법률 모니터링을 신청했다. 그러나 막상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서 설명을 들으니 법률 모니터링을 맡았다고 법률 모니터링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다양하게 하는 것을 권고하시길래 계획을 수정해서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일주일정도가 지난 후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을 택해 사무실을 찾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 법률 모니터링이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법원 내부를 둘러볼 수 있어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종 재판과 관련된 표지판이 어지럽게 되어있어 좀 헤매다가 결국 들어간 곳은 가사법정. 숱하게 이혼하는 부부와 위자료, 양육비 문제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 주는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엄숙하고 웅장한 분위기이기 보다는 간단하게 짤막한 형식으로 끝나는 재판이 많아서 의외였다. 한 시간 가량동안 다수의 재판이 끝나고 조용히 나가려 할 때 법원 정리일을 하시는 분이 학생이 여긴 웬 일이냐고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법에 관심이 있어 견학차 왔다고 설명하고 평소 궁금했던 이런저런 사항들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면서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 이혼사유에 관한 조문까지 알려주셨다. 그 때 우연히 법정 내부의 법전이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니터링을 할 때 적어 넣었다.
다음으로 사무실을 찾았을 때 맡게 된 것은 4. 15 총선 관련 모니터링이었다. 이 날 사무실에서 신문에 실린 전국의 총선 후보 재산과 병역기록, 전과기록 등을 모두 분석해서 통계를 내리는 일을 맡았는데, 후보 중에서 총재산이 20억이 넘는 사람이 의외로 상당히 많아서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서민정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재산이 20억, 50억이 웬 말인가.본격적으로 총선 모니터링을 시작할 때는 그 때가 한창 선거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어서 지역 후보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언론에서도 당 별로 논조가 달라지지는 않는지 사설과 기사 등을 검토하였다. 이 중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출력하여 차근차근 파일에 스크랩하였다. 내가 맡은 지역은 관악구 갑 지역이었는데,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한창 선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참 도움이 많이 됐던 일이다. 최근 들어 새삼 느끼고 있는 무서운 일 한 가지가 국민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이었는데, 총선 모니터링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도 생기고 내가 뽑을 후보자의 신상 정보도 자세하게 알게 되어 가족들에게 습득한 지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총선 모니터링을 마친 이후 집중적으로 한 일이 바로 학술대회 모니터링이다. 각종 학술대회, 세미나, 심포지엄에 참석해서 관련 자료를 얻고 간단한 기록을 하면 봉사활동으로 인정해 준다는 말씀을 듣고 인터넷으로 각종 행사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관련 정보를 얻기도 하여 대략 참석할 곳을 몇 곳 정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참석한 학술대회가 한국민사법학회에서 여는 춘계학술대회였는데, 늘 수업을 듣는 학교 내 법대 모의 법정실에서 열리는 것이라 분위기도 친숙하고 관심 있는 분야인 법에 관련된 학술대회라 교수님들의 발표를 비교적 지루함이 없이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교수님이었고 극소수는 대학원생이라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학술대회 형식이 평소 수업시간에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금방 익숙해졌다. 세미나 중간중간 간식이 제공된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일주일 후에는 학교 인문대에서 한국언어문화학회에서 여는 춘계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들의 사학 전공 교수님, 국문 전공 교수님들도 계셔서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앞자리에 앉아 자료집을 보면서 발표를 경청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문학의 힘, 위상을 다시 한 번 제고해 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하는 발표와 마찬가지로, 교수님들의 발표도 발표시간이 정확히 지켜지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거의 두 시간 정도 지체되었다. 특히 시간에 쫓기어 마지막에 토론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 다음 주에 사무실에 찾아가 학술대회 자료집 각각 3부와 간단한 기록과 감상을 적어 제출하고 또 다른 참석할만한 세미나가 있는지 검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검색한 15개 정도의 세미나 중에서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행정법학회 학술대회가 마음에 들어서 참석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이름을 적고 나왔다.
그래서 그 주 주말에 코엑스 컨퍼런스홀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국제행정법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존에 학교에서 열렸던 세미나와는 달리 국제적으로 열리는 세미나라서 그런지 확실히 규모가 크고 자료집의 종류도 많아서 부지런히 자료집을 챙긴 뒤 자리를 잡았다. 동시통역기를 한쪽 귀에 꼽고 발표를 들으면서 자료집을 보니 생각보다 난해하지도 않고 한국, 대만, 일본의 정세를 아울러 파악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기회에 사회봉사를 처음으로 하면서 느꼈던 점은 봉사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 더구나 했던 활동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지식 함양에도 큰 도움이 되었기에 봉사라고 말하기도 뭐할 정도로 큰 도움이 되었다. 학교 수업을 매일매일 나가면서 봉사를 별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일정에 무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됐지만 개인이 자율적으로 시간 나는 때에 자유롭게 봉사시간을 선택 할 수 있어 틈틈이 부담 없이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 결국 애초에 신청했던 재판 모니터링은 많이 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다. 특히 각종 학술대회에 참석하면서 습득한 지식과 교수님들의 토론방식, 태도 등은 앞으로 학교 수업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들이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좁은 사무실 평수, 구형 컴퓨터가 현 시민단체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부조리를 감시하며 고발하는 법률소비자연맹 가족들은 비록 배가 고플지라도 누구보다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분들이다.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늘 반갑게 맞아주시고 치열하게 사회를 고민하는 그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