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소감문
소감문 한양대 법학과 문아란
법률연맹
2009-03-13 00:00:00
300
겨울학기를 맞아 1학년이라고 놀기보다는 사회봉사를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법정 모니터링 활동. 법학도로서 한번쯤은 이런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약간은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론은 내가 공부하는 것에 대한 가벼운 관심으로 끝난 것이 아닌 의외로 많은 것을 배우게 했던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봉사활동으로 한 주요 업무는 ‘법정 모니터링’이었다. 이 업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공개재판을 방청하고 그 재판에 임하는 법조인들, 원/피고인들, 직원들, 법원시설 등을 관찰하여 인권이 상실된 부분은 없는지, 공개재판에 어울리지 않는 재판을 하지는 않는지, 여러 부분들 사이에서 칭찬할 부분은 있는지, 이런저런 법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황, 부분들을 주어진 양식 안에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이었다.
내가 모니터링을 위해 재판을 들어간 횟수는 하루에 두 법정씩 12번 정도.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내가 모니터 요원이다”라는 마음과 함께 처음 법정에 들어선 순간은, 약간의 희열을 느낄 정도의 흥분으로 가슴 떨린 순간이었다.
그런데 법정에는 들어갔으나, 법대생이라고 말하지 못할 만큼 부끄럽게도 법정상황 파악이 늦어서 당황스러운 느낌도 받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가 바로 보이는 저 판사, 변호사, 검사자리에 앉을 것이라는 기대, 바람들이 어우러진 마음 상태 속에서 처음의 모니터링은 정신없이 지나고 말았다.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그저 “이런 것이 있구나..”정도의 느낌을 받고 신기함에 끝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모니터링을 하면서 어떤 것을 내가 포착해야 하는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어떤 상황에 어떤 반응들이 나오는지 하나하나 익혀나가기 시작했고, 횟수가 늘면서 여유도 부려보고 원고와 피고의 입장을 스스로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즐겁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또한 내가 21년을 살면서 가지고 있던 법조인, 법원, 재판에 대한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법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재판의 모습과는 약간은 다른 점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흔히 변호사라 생각하면 영화에서 의뢰인을 위해서 열성적으로 뛰어다니고 증거를 찾고 변론하여 승소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판사라 하면 권위 있는 높은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보다 확실히 판결하려 눈을 번쩍거리며 사건에 집중하는 모습을 의례 떠올리지 않는가?
그런데 재판정에서 조는 판사가 있는가 하면, 변호사들은 열성의 눈빛은 어디로 가고 건성건성 변호하는 듯이 보이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의 변론을 다 듣지 않고 끊기도 하고, 경어를 써주기보다는 반말을 섞어서 쓰기도 하고 법관, 변호사라는 사람들이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전적으로 내보이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었다.
한 재판이 걸리는 시간도 좀 의외였는데, 열띤 변론이 오가는 것이 아닌 “서면으로 제출하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이 잦고 변론이 없는 상황이면 길어야 3분, 짧으면 40초에 이르는 재판시간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일 속상했던 것은 ‘국선변호사’ 때문이었다. 형사재판을 가면 국선변호인의 변론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변호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거듭 이어지는 법정에서 다 밝혀진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질문만을 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형식만을 따지는 일인 것 같아서 맘이 썩 좋지 않았다.
모니터링을 몇 번 하고서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실에서 봉사활동 담당하시는 부장님과 재판에 대해 간단한 문답형식의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국선변호사에 대한 말을 하자 정말로 현재의 상황으론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여 승소할 확률이 0%라고 했다. 그만큼 성의 없이 변호하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사람의 재물에 관한 관심이 변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또, 대화중에 법대생인데도 실제 재판에 대해서 잘 몰라서 부끄러웠다고 내가 말하자 부장님께서 학교에서 소송법을 배운다고는 하나 실습이 없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예비판사’제를 2년 정해 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것저것 두어 시간 정도 대화를 하면서 문답하는 가운데 ‘사법’이라는 이름의 실체(?)도 많이 안 것 같고 학교에서 배운 것 이외에 좋은 지식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꽤 좋았다.
내가 일한 봉사활동은 내가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도와주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많이 배워오고 느끼는 활동들이었던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했다. 막연히 고등학생 때의 관공서에서 청소하고 간단한 일 도와주고 시간만 채우기를 원했던 활동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봉사활동 담당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기쁨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사회봉사활동을 꺼리는 이유가 자신의 것만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닌 공유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면 나의 생각과 같이 오히려 많이 배우는 활동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다음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를 할 기회가 또 있다면, 국정감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보고 싶다.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에 대한 실체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끝.
내가 봉사활동으로 한 주요 업무는 ‘법정 모니터링’이었다. 이 업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공개재판을 방청하고 그 재판에 임하는 법조인들, 원/피고인들, 직원들, 법원시설 등을 관찰하여 인권이 상실된 부분은 없는지, 공개재판에 어울리지 않는 재판을 하지는 않는지, 여러 부분들 사이에서 칭찬할 부분은 있는지, 이런저런 법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황, 부분들을 주어진 양식 안에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이었다.
내가 모니터링을 위해 재판을 들어간 횟수는 하루에 두 법정씩 12번 정도.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내가 모니터 요원이다”라는 마음과 함께 처음 법정에 들어선 순간은, 약간의 희열을 느낄 정도의 흥분으로 가슴 떨린 순간이었다.
그런데 법정에는 들어갔으나, 법대생이라고 말하지 못할 만큼 부끄럽게도 법정상황 파악이 늦어서 당황스러운 느낌도 받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가 바로 보이는 저 판사, 변호사, 검사자리에 앉을 것이라는 기대, 바람들이 어우러진 마음 상태 속에서 처음의 모니터링은 정신없이 지나고 말았다.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그저 “이런 것이 있구나..”정도의 느낌을 받고 신기함에 끝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모니터링을 하면서 어떤 것을 내가 포착해야 하는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어떤 상황에 어떤 반응들이 나오는지 하나하나 익혀나가기 시작했고, 횟수가 늘면서 여유도 부려보고 원고와 피고의 입장을 스스로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즐겁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또한 내가 21년을 살면서 가지고 있던 법조인, 법원, 재판에 대한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법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재판의 모습과는 약간은 다른 점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흔히 변호사라 생각하면 영화에서 의뢰인을 위해서 열성적으로 뛰어다니고 증거를 찾고 변론하여 승소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판사라 하면 권위 있는 높은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보다 확실히 판결하려 눈을 번쩍거리며 사건에 집중하는 모습을 의례 떠올리지 않는가?
그런데 재판정에서 조는 판사가 있는가 하면, 변호사들은 열성의 눈빛은 어디로 가고 건성건성 변호하는 듯이 보이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의 변론을 다 듣지 않고 끊기도 하고, 경어를 써주기보다는 반말을 섞어서 쓰기도 하고 법관, 변호사라는 사람들이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전적으로 내보이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었다.
한 재판이 걸리는 시간도 좀 의외였는데, 열띤 변론이 오가는 것이 아닌 “서면으로 제출하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이 잦고 변론이 없는 상황이면 길어야 3분, 짧으면 40초에 이르는 재판시간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일 속상했던 것은 ‘국선변호사’ 때문이었다. 형사재판을 가면 국선변호인의 변론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변호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거듭 이어지는 법정에서 다 밝혀진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질문만을 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형식만을 따지는 일인 것 같아서 맘이 썩 좋지 않았다.
모니터링을 몇 번 하고서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실에서 봉사활동 담당하시는 부장님과 재판에 대해 간단한 문답형식의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국선변호사에 대한 말을 하자 정말로 현재의 상황으론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여 승소할 확률이 0%라고 했다. 그만큼 성의 없이 변호하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사람의 재물에 관한 관심이 변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또, 대화중에 법대생인데도 실제 재판에 대해서 잘 몰라서 부끄러웠다고 내가 말하자 부장님께서 학교에서 소송법을 배운다고는 하나 실습이 없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예비판사’제를 2년 정해 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것저것 두어 시간 정도 대화를 하면서 문답하는 가운데 ‘사법’이라는 이름의 실체(?)도 많이 안 것 같고 학교에서 배운 것 이외에 좋은 지식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꽤 좋았다.
내가 일한 봉사활동은 내가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도와주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많이 배워오고 느끼는 활동들이었던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했다. 막연히 고등학생 때의 관공서에서 청소하고 간단한 일 도와주고 시간만 채우기를 원했던 활동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봉사활동 담당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기쁨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사회봉사활동을 꺼리는 이유가 자신의 것만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닌 공유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면 나의 생각과 같이 오히려 많이 배우는 활동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다음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사회봉사를 할 기회가 또 있다면, 국정감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보고 싶다.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에 대한 실체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끝.